혈기왕성한 젊은이나 연부역강한 장년층도 아닌, 머리가 희끗희끗한 칠순 노인들이 길거리에 나서고 성명서를 발표하는가 하면, 대통령면담을 신청하고 여당을 찾아다닌다. 엊그제는 ‘바다이야기’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 원로들이 ‘도박과의 전쟁’을 위한 범국민운동을 제안했다. 며칠 전에는 역대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원로들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해 잇단 모임을 갖고 정부에 환수논의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칠순 노인이라고 해서 정치 뒷전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감한 생각이 든다. 현역에서 은퇴한 노인이라면 속세의 번뇌로부터 떠나 베개를 높이하고 유유자적의 생활을 즐길 연배인데, 노구를 이끌고 나라를 걱정하는 일에 나서게 된 것이 범상치 않기 때문이다.
이 모습들을 보면서 생각나는 구절이 하나 있다. “나라가 여러분에게 무슨 일을 해줄 것인가를 요구하지 말고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을 할까 자문해 보라”고 했던 케네디 대통령의 말이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해주는 일은 없고 오히려 거덜을 내고 있으니, 이제 원로들이라도 나서서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보겠다고 손발을 걷어붙인 것일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나라꼴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을 어떻게 잡고 어떻게 유지하나 하는 점에만 혈안이 된 ‘정치공학’만이 있을 뿐, ‘국리민복’이라는 의제를 위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며 또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지기조차 인색해하는 정치리더십의 독선과 오만을 고발하는 것이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고 했는데, 사라졌던 이들 원로와 노병이 다시 등장한 것을 보면, 무엇보다 청와대의 책임이 크다. 온 나라가 도박판이 될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대통령의 친인척에 불똥이 튀는 것만을 막는 데 결사적이다. 또 ‘국정4륜’을 언급하면서 언론은 뭐 했느냐며 오만함을 보인다. 나랏일에 무한책임을 져야 할 국정책임자가 ‘내 탓이오’를 하기보다는 ‘짖지 않은 개’를 빗대어 ‘네 탓’을 하니 군색하다는 느낌이 든다.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외곬으로 ‘자주’만 생각하는 민족주의 소신을 내세우며, 언론이나 시민단체를 설득하지도 않은 채, 국민적 합의 절차도 없이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는 심정으로 작전권 환수를 밀어붙이고 있다. 모두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아마추어 리더십’이요, 소신만 가졌지 반대의견을 아우르는 데 필요한 포용력은 갖지 못한 ‘통합력 결여의 리더십’이다. 대통령 친인척의 연루 사실이 밝혀지지 않아도 대통령은 ‘도박공화국’의 발호에 책임이 없을 수 없고 또 ‘잃어버린 주권’은 되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앞으로 ‘잃어버릴 10년’을 걱정하는 사람의 우려는 어떻게 가라앉힐 텐가.
야당은 야당대로 자신의 독자적인 이슈를 개발하지 못한 채 정부 여당이 세워놓은 어젠다를 이리저리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유력한 대권주자들이 눈치만 보며 몸을 사리고 있는 것도 원로들이 나선 한 가지 이유다. 나라의 중대 현안이 불거졌으면, 가타부타 말을 해야 하는데 왜 침묵을 지키는가. 혹시 이미지를 파는 ‘마케팅정치’에서 지장이 있을까 봐 그러는 것인가.
나라의 장래를 걱정할 사람도 없고 그런 걱정을 털어놓을 공간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나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비장함이 노병과 원로를 정치 일선으로 내몬 것이다. 이들이 나선 데는 이 같은 절박함이 서려 있다. 나라가 결딴나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방향도 잃고 항로도 잃었는데 선장조차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줄 모른다면, 언제 빙산에 부딪혀 비극의 ‘타이타닉호’처럼 침몰할는지 모른다. 그러고 나서 그때의 선장처럼 어린애와 여자만 구명정을 타고 남자들은 죽으라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