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50기 국수전…두터움의 힘

  • 입력 2006년 9월 6일 02시 58분


흔히 ‘두터움은 어음, 실리는 현찰’에 비유한다. 두터움은 당장 집으로 환산되지 않고 서서히 가치를 드러내기 때문에 잘 운용하지 못하면 부도수표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기사들은 실리에 민감하면서도 두터움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바둑이 엷으면 그만큼 시달리기 때문이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시달림의 고통을 모른다.

지금 이 바둑이 그렇다. 흑은 두터움을 활용해 백의 엷음을 요소요소마다 찔러 승세를 굳혔다. 최철한 9단은 백 122부터 혼신을 다해 끝내기를 해보지만 흑은 지키기만 해도 될 정도로 여유롭다.

이를테면 흑 135와 같은 수. 골치 아프게 둘 것 없이 이렇게 알기 쉽게 두는 손길에서 “이겼다”는 이희성 6단의 선언을 듣는 듯하다.

흑 147∼159에서 보듯 흑은 두터움을 굴려 한 집 두 집 살점을 붙이는 데 비해 백은 부풀어 오르는 흑집의 고봉을 쳐대기에 급급하다. 말할 것도 없이 두터움의 힘이다.

바둑은 이후 50여 수 더 나아갔으나 10여 집의 차이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돌을 던진 207수 때에는 한두 집 더 격차가 벌어졌다.

대국자 이름을 가리고 기보를 보면 십중팔구 흑을 쥔 이가 최철한 9단이라고 말할 것이다. 오히려 이희성 6단이 두텁게 판을 짜는 최철한 스타일로 완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흑 159 이하의 수순은 총보로 대신한다.

해설=김승준 9단 글=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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