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윤재]수해, 내년에도 하늘 탓만 할건가

  • 입력 2006년 9월 6일 02시 58분


예년과 다름없이 집중호우로 수해를 당했던 올여름도 아무렇지 않은 듯 가고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수해가 한창일 때 사람들은 바캉스 떠나느라 바빴고, 정치인들은 여전히 기(氣) 싸움으로 나라 살림은 뒷전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어느 세월에 수해 원인을 찬찬히 따져 보고, 당장 내년의 집중호우에 대비한 방책을 생각하겠는가. 산사태에 휩쓸려 죽어가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는 금수강산의 풀과 나무, 곤충과 짐승들의 소리에 언제 귀를 기울이겠는가.

깊은 산중에서 불이 나면 ‘천둥번개 때문’이라 하고, 동해안에서 명태가 안 보이면 ‘이상난류 때문’이라고 둘러대듯, 이번 수해도 집중호우 때문이라는 설명을 문제시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집중호우에 대비하는 실효성(實效性) 있는 국가 정책이 불비(不備)했던 것이 원인인데도, 착한 백성들은 의연금 내고 봉사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세수(稅收) 증대를 이유로 ‘합법적으로’ 허가해 준 펜션과 산중도로로 멀쩡한 산등성이가 마구 파헤쳐졌기 때문에 산사태가 더 심해졌음을 제대로 지적하는 환경단체도 별로 없다. 수해 복구한다면서 계곡을 하수도처럼 반듯하게 만들어 놓아 유속이 급하게 된 탓에 범람이 반복되고 있음을 꼼꼼하게 지적하는 전문가도 없다. 국가 경영을 맡은 나라머슴들(public servants)은 근본 대책을 고민하기보다 태풍 무사통과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추석 보너스’나 기대하는 듯하다.

과거엔 안 그랬다. 홍수나 가뭄이 들면 임금과 조정은 온통 긴장에 휩싸인다. 천재지변을 책임 회피의 핑계 거리로 삼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신중한(prudent) 국가 경영의 기회로 삼았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하늘이 이렇게 꾸짖으시나” 하며 근신과 반성의 기회로 삼아 모든 정책을 재고 삼고했다. 세종은 몇 달을 쉴 새 없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현장조사 때 일산(日傘)과 부채를 쓰지 않았다. 반찬 가짓수도 반으로 줄였다.

그렇지만 올해 우리의 나라머슴들에게선 진정으로 반성하고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다. 대증요법적 예산 집행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 식이다. 국가 경영 차원에서 이번 수해의 원인은 다음 두 가지다. 해마다 집중호우의 피해를 보면서도 근본적인 중장기 대책을 안 세운 나라머슴들의 게으름과 직무 유기가 그 첫째다. 그리고 지자체장들로 하여금 주민들의 표심(票心)을 거슬러 건강한 소신을 마음껏 펴지 못하게 하는 주민직선제가 그 둘째다.

이런 형편에서 어떻게 정치인들에게 내년 선거 말고 “내년 홍수에 대비하라”고 할 것인가. 또 어떻게 일선 관리들이 환경영향평가나 사전환경성검토를 더욱 철저하게 이행할 것을 기대하겠는가. 특히 ‘표를 사야 할’ 정치인들과 그를 보좌하는 공무원들이 업자들의 개발 논리와 ‘세련된 선물 공세’를 무슨 힘으로 거스르겠는가. 댐을 또 세운다지만 그 댐으로 아름다운 골짜기와 정다운 고향 마을이 모조리 파괴되고 사라진다면, 관광은 다 무엇이고 소득증대는 다 무엇인가.

3년 전 경북 영천시의 보현산 천문대 관광도로 때문에 산사태가 나 온 산등성이가 흉물스럽게 파괴된 현장을 보고 망연자실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정치인이든, 공무원이든 진정으로 금수강산 걱정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이런 엄청난 국토 파괴는 예방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료들과 이런 생각을 나눴다. 첫째,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같은 ‘녹색자원보전계획’을 국가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나마 그린벨트법으로 유지되던 산림 계곡 강변 해변들을 지킬 종합대책과 관련 법규를 우선 마련해야 한다. 그 추진 기관은 대통령 직속으로, 관련 인허가 과정들을 권위 있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수해 복구공사를 포함한 모든 건설공사에 ‘시공자 및 관리책임자 실명제’가 절대 필요하다. 이제는 건설공사에서도 과거사 규명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규와 제도를 투명하게 만들어 운용할 필요가 있다.

해마다 지진에 시달리는 일본이 내진(耐震) 설계 및 시공에 앞선 나라라면 대한민국은 내(耐)집중호우 설계 및 시공의 모범국이 돼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지금 나라는 온통 형편없이 오염된 ‘바다이야기’ 속에 빠져 있으니 답답하다. 올곧은 시민들이 ‘수재의연금 안 내기’ 운동이라도 벌인다면 게으른 나라머슴들이 정신을 차릴 것인가.

정윤재 객원논설위원·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tasari@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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