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칼럼]국민이 왜 失政수업료 내야 하나

  • 입력 2006년 9월 7일 20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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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사이에 낀 작은 나라. ‘변방의 운명’ 때문에 원치 않는 전쟁을 치르며 공산화 위험에 떨었던 나라. 그래도 글을 모르면 장가도 못 갔을 만큼 교육을 중시한 나라. 지금은 국가경쟁력 세계 1위, 학업성취도 1위, 청렴도 1위를 자랑하는 글로벌 지식강국 핀란드 얘기다. 15년 전만 해도 이 나라는 대공황 이래 가장 혹독한 경제 침체를 겪은 약소국이었다.

취임사부터 ‘변방의 역사’를 한탄하며 ‘동북아 균형자’가 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은 핀란드가 불과 3년, 자신의 집권 기간과 비슷한 시간에 최악의 불황을 이겨 낸 사실도 알고 있을까.

핀란드는 서쪽의 스웨덴, 동쪽의 러시아에 수백 년을 시달린 진짜 변방의 역사를 갖고 있다. 1991년 경제위기도 소련 때문이었다. 교역의 25%를 차지하던 소련이 무너지면서 과도한 세금과 공공지출, 자산 거품이 터진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쳤고 실업률은 20% 가까이 치솟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노르딕 모델’은 끝났다고 했다.

이 나라를 살린 것은 우리의 좌파가 지금도 공격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었다. 올 초 핀란드 정부와 세계은행연구소는 ‘지식경제(국가)로서의 핀란드’라는 책에서 “핀란드의 성공은 워싱턴 컨센서스에 있다”고 했다. 정부가 균형 잡힌 재정정책을 펴면서 탈(脫)규제와 자유화로 민간을 경쟁시키는 게 핵심이다.

3년 정도면 나라를 망하게도, 흥하게도 할 수 있음을 핀란드가 보여 준다. 1991년 25년 만에 집권한 중도우파 정부는 변방의 운명을 반전시켰다. “1995년부터 핀란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시기가 시작됐다”는 정부 홈페이지의 ‘선전’은 눈물나게 부럽다.

강소국(强小國)의 휴먼캐피털을 키운 교육 역시 우리의 교사단체가 치를 떠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거쳤다. ‘노무현 코드’의 집행자였던 김진표 전 교육부총리는 “핀란드도 고교 평준화로 교육의 질을 높였다”고 했지만, 아니다. “(핀란드에서는) 인기 있는 후기중등학교(고교)에 입학하려면 중학교까지의 성적이 중요하다”는 보고서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떠 있는데 왜 국민을 속이는 소리를 했는지 묻고 싶다.

한누 시몰라 헬싱키대 교수는 2002년 ‘스칸디나비아 교육연구 저널’에 낸 논문에서 “1990년대 초 학교 간 교사 간의 경쟁과 학교 선택, 학업 성취 평가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으로 전환됐다는 여러 연구가 있다”고 못 박았다. 노 정부 식 평등교육은 핀란드가 1980년대를 끝으로 청산했던 구식이라는 얘기다.

대학도 의학이나 디자인 등 인기학과에 입학하려면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어야 한다. 정보커뮤니케이션기술(ICT) 선두 국가답게 외려 이쪽 전공이 경쟁률도 낮고 취업도 쉽다. 그래도 핀란드엔 사교육이라는 개념조차 없다. 국민 세금으로 수업료를 받는 학교와 교사가 책임지고 ‘지식창조’ 교육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바다이야기’와 관련해 “비싼 수업료를 낸다고 생각하고 인내해 주시면 확실하게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수업료란 배우는 사람이 내야 원칙이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에 나설 만큼 착하고도 강한 우리 국민은 이 정부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 정권의 이념병(病)과 무능 때문에 나라가 어처구니없이 무너질 수도 있음을 배우기엔 수업료가 너무 비싸다.

핀란드는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로 ICT 강국에 올라섰지만 공공 부문 연구비는 경쟁력 없는 공기업을 팔아서 댔다. 괜한 ‘사회적 일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일손이 필요한 분야에 재교육, 재취업시키는 것으로 사회안전망을 다진다. 청렴위원회가 없어도 부패한 공무원은 없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이런 데서 나온다. 그래서 세금 부담이 커도 불만은 적다. 이왕 세금 쓰며 핀란드까지 방문한 우리 대통령도 정부가 할 일을 확실히 배우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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