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선 허드렛일을 하는 이도 영어를 유창하게 했다. 유럽을 다녀 봤지만 그처럼 영어를 잘하는 나라도 없었다.
부문별로 세계 10위 내에 있는 기업도 여러 개였다. 휴대전화 제조 부문에서 정상인 노키아를 비롯해 엘리베이터 회사인 코네는 4위, 컴퓨터 보안업체인 F-시큐어는 6위다. 세계은행에서 집계한 2004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2880달러.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도 2005년까지 3년 연속 1위다. 그야말로 강소국(强小國)이다.
더 놀라운 것은 두드러지지 않는 문화유산이었다. 전통 음식도 풍요롭지 않았다. 헬싱키의 대성당이나 요새, 1812년까지 수도였던 투르쿠의 성(城)에도 가 봤지만 유럽의 중심에 비해 척박했다.
이 같은 작은 나라가 어떻게 글로벌 경쟁력에서 우뚝 설 수 있었을까. 옆 자리에서 강의를 들은 코네의 라스 메켈라 부사장(M&A 담당)은 “우리의 핵심 역량은 사람뿐이고 경쟁과 교육 시스템을 통해 인재를 육성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나라는 대학 경쟁력도 세계 정상권이고 대학원을 나오면 보통 6개 국어를 한다고 한다.
탈린은 구소련에서 1991년 독립한 에스토니아의 수도다. 핀란드 만을 사이에 두고 헬싱키와 마주 보고 있으며 두 도시 사이에는 매일 여객선이 오간다. 쾌속선을 타면 한 시간 반 거리다.
탈린의 올드 타운에 가면 옛 성곽이나 건축물이 헬싱키보다 한 수 위의 문화를 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곽도 투르쿠 성보다 웅장하고, 성당의 외관이나 내부가 당시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 준다.
그러나 현재는 헬싱키에 비해 낙후됐다. 헬싱키로 농산물을 공급해 주지만 경제 의존도가 심하다. 2004년 1인당 GNI는 7080달러. 최근 시장 경제와 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현지인들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고 딱딱했다.
두 나라는 수백 년간 스웨덴 러시아 등 인근 열강에 시달렸으나 20세기 중반 이후 운명이 엇갈렸다. 핀란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과 구소련 사이를 오가며 국가 경쟁력을 높였다. 반면 탈린은 1940년 선거에서 공산당이 승리해 구소련에 가입했으며 한때 독일 치하에 있다가 1944년 구소련에 복귀했다.
이처럼 한 나라가 비상과 추락의 길로 갈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메켈라 부사장에게 의견을 구했더니 “사우스코리아와 노스코리아도 그렇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배 구조를 꿰뚫고 있었고, 합작 회사 제안을 받아 평양에도 다녀왔다.
그의 말을 듣자 서울과 평양이 대비됐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어두운 탈린의 표정을 기자가 안타깝게 여긴 것처럼 외국인의 눈에도 남한과 북한이 그렇게 비치지 않을까.
메켈라 부사장에게 적절한 논리를 찾지 못해 말을 못한 게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래 ‘진보’라며 북한의 주장에 경도된 이들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마침 노무현 대통령이 헬싱키에 있다. 혹시 수행원 중 누군가 그를 만나면 대신 설명을 해 줬으면 한다.
허엽 문화부 차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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