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후보자도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헌재 재판관으로서 청와대의 사퇴 요청에 추수(追隨)하는 무소신(無所信)을 드러냈고, 재판관직 사퇴 후의 소장직 취임이 편법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헌재소장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우리는 본다. 이에 대해 전 후보자도 책임을 져야 옳다.
여당은 14일 본회의에서 다시 임명동의안을 처리하겠다지만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같은 편법은 거듭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을 끌어들여 정치적으로 어물쩍 해결하려 해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절차적 정당성이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헌법재판의 대표자를 임명하는 문제야말로 그렇다.
여당이 편법 처리를 강행한다면 민생법안을 심의하고 국정감사를 시작해야 할 정기국회가 파행으로 치달을 우려가 높다. 한나라당은 위헌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하니 정국 경색 속에 국정이 더 표류하지 않겠는가.
헌재소장 편법 내정의 법적, 절차적 하자를 알아채지 못한 국회도 책임을 무겁게 느껴야 한다. 그 많은 법조인 출신 의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열린우리당이 뒤늦게 “헌재소장과 재판관의 동시 인사청문회가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것은 편법을 자인한 것일 뿐이다. 집권당 수준이 이 정도이니 나라가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이다. 방향을 못 잡고 우왕좌왕한 한나라당의 행태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일을 제대로 챙기는 사람이 없는 정당 아닌가.
노 대통령은 헌재소장 임명 문제를 원점에서 재고해야 한다. 무리한 ‘전효숙 카드’를 오기(傲氣)로 강행하려 해서는 이미 빚어진 파행조차 해소하지 못한 채 정국 난기류를 증폭시키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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