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지인에게서 e메일이 와 있었다. 우리가 혹시 전시작전통제권과 한미연합사령부 시스템의 실체도 잘 알지 못한 채 폐기 처분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였다.
한미 정상이 한국의 전시작전권 환수를 공식화했다.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이제 배는 완전히 떠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던지고 싶은 질문은 과연 우리는, 아니 노무현 대통령은 실상을 정확히 알고 결정을 내렸는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미국이) 일으키면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유명환 외교통상부 차관·14일 발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한국과 다르다. 세계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전시작전권이 없다.”(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패전국인 일본조차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맡기고 있지 않다”(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우리에겐 군사 주권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 리스트는 끝이 없고 레퍼토리는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지난 수개월간 기자가 만난 전문가들의 설명은 달랐다. 이들 가운데 한미연합사 시스템이 폐기해야 할 만큼 군사 주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들 중에는 서울에서 전시작전권 환수 업무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현직 공무원도 여럿 포함돼 있다.
“한미연합사의 지휘권은 나토군과 다를 게 거의 없지요. 예를 들어 독일이 러시아의 침공을 받을 경우 독일의 전력이 나토군사령관(미군 측)에게 넘어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국이나 독일을 보고 군사 주권이 없는 나라라고는 하지 않지요.”
“한미연합사령관의 전시작전권은 양국 대통령과 합동참모본부의장의 통제를 받습니다.”
“일본은 평화헌법 때문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지요. 나토나 한국을 부러워하는 일본 군사전문가를 많이 봤습니다.”
한미연합사 운용 체계는 군사 비밀이다. 하지만 어차피 폐기될 것이라면, 이제라도 정부는 국민에게 그 실체를 상세히 알려 줘야 한다. 그래야만 현 정권의 고위 관리들이 국민을 호도했는지, 아니면 ‘아래 급’에선 접근할 수 없었던 모종의 진실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 판단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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