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워런은 취임 후 진보 다수파를 구축해 ‘아이젠하워코드’를 완전히 버리고 정치적 독립을 이루어 냈다. ‘인종분리 교육은 위헌’이라는 판결 등으로 ‘사법혁명’의 빛나는 역사를 주도했다. 아이젠하워는 “워런을 임명한 것은 일생일대의 가장 멍청한 실수”라고 후회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였던 밥 우드워드의 ‘형제들(The Brethren·대법원판사끼리 형제로 부르는 데서 따 온 제목)’에 나오는 얘기다.
전효숙 헌재 소장 후보자는 노무현 대통령을 후회하게 만들 수 있을까. 설혹 본인이 원했더라도 청와대가 3년간 재판관으로 재직한 전 씨에게 새 임기 6년을 더 보장하려고 한 점, 이를 민정수석비서관으로 하여금 전화로 통보하게 한 점 등은 민주국가의 생명과도 같은 절차적 정당성을 위반한 것이다. 이는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의 희망처럼 국회 표결을 서둘러서 치유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리의 공백보다는 잘못된 선택이 재판 기피 사태 등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전 씨에게 ‘대통령코드’에서 해방돼 ‘헌법코드’로 재무장할 소신과 각오가 있느냐는 점이다. 국회의원들은 이 점을 우선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로봇 재판소장’을 낳게 된다면 국민과 헌법에 대한 배신행위가 될 것이다. 재판관 3년 경험자가 헌법상의 임기 문제에 눈을 감고 ‘대통령의 뜻’ 운운한 것은 ‘욕심’이 앞섰음을 말해 준다. 헌재 재판연구관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와 현 정권에서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어느 법조인은 한목소리로 양식과 소신의 결여로 파악했다.
전 씨는 다른 사람이 식사 초대를 했을 때는 가장 먼저 주문을 하고, 자신이 초대했을 때는 맨 마지막에 주문한다고 한다. 전자의 경우 싼 음식을 고르기 위해서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편하게 주문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라는 얘기다. 그러나 헌재 소장은 인간성이나 성품만으로 감당해 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6년 임기를 마치고 14일 재야로 돌아간 윤영철 씨는 퇴임사에서 그 자리의 어려움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념과 이해(利害)의 갈등이 소용돌이치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것 같았다.”
전 씨는 청문회 답변을 통해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는 접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설득력 있는 뒷받침은 없다. “헌재의 결정은 재판관들이 합의해서 하는 것이니까 독단적으로 할 수 없다”는 막연한 답변이 고작이다. 외압(外壓)의 바람막이와 내부 조정자로서의 능력은 극히 의문스럽다. 헌재는 국가의 운영 방향과 현실 정치, 국민의 삶에 중대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헌재 구성 문제를 두고두고 걸림돌로 만들기보다는 노 대통령이 먼저 ‘전효숙 카드’를 버릴 때다.
육정수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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