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일본서 날아온 국립대 법인화 성공 소식

  • 입력 2006년 9월 19일 02시 59분


최근 뉴스 세 가지를 나란히 놓고 보자. 어떤 뉴스는 국내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뉴스 1. 일본 문부과학성은 87개 국립대학법인이 2005년도 결산에서 716억 엔의 이익을 냈다고 발표했다. 흑자는 주로 특허료 수입(약 118억 엔)과 연구보조금(약 68억 엔)이 늘고, 인건비(약 137억 엔)가 줄었기 때문이다. 3개 대학만이 적자였는데, 이는 모두 부속병원 정비사업 때문이었다.

뉴스 2. 도쿄대가 일본 최대의 신용평가기관인 R&I로부터 최고등급인 AAA를 받았다. R&I가 등급을 매기는 669개 기업과 단체 중 AAA등급을 받은 일반 기업은 도요타와 자동차부품회사 덴소, 다케다약품뿐이다. 법인으로 바뀐 국립대가 신용평가를 받은 것은 도쿄대가 처음이다.

뉴스 3.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22명의 학과장에게 인사와 예산집행의 전권을 주기로 했다. 총장과 학장의 전유물이었던 교수임면권도 학과장이 갖는다. 학과장이 사실상 독립법인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것이다.

세 뉴스의 공통 키워드는 ‘대학’과 ‘법인’, 곧 대학 법인화다. 국립대 법인화는 대학의 자율성을 늘려 경쟁력을 높이는 게 목표다. 세 뉴스는 스스로 벌어 스스로 먹고살게 된 국립대 법인이나, 법인을 지향하는 대학의 도전과 성공에 관한 얘기다. 그러나 성공은 그냥 오지 않는다. 뉴스 뒤에도 뉴스가 있다.

뉴스 1의 뒷얘기는 이렇다. “2년 전에 법인으로 바뀐 국립대가 수입 증대와 경비 절감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캠퍼스를 영화 로케 장소로 빌려 주거나, 학교에서 기른 마쓰자카규(松阪牛·브랜드 소의 이름)를 출하해 수입 증대에 애쓰는 한편 학장 스스로가 절전에 나서는 등 경비 절감에도 노력하고 있다. 어느 대학 할 것 없이 흑자를 목표로, 지혜를 짜내는 매일매일이 계속되고 있다.”(9월 3일자, 요미우리신문)

뉴스 2의 도쿄대는 일반 기업과 비교해서 어떤 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을지가 궁금했단다. 사립대는 이미 21개 대학이 평가를 받고 있다. 그중 와세다 게이오 도시샤대가 최고등급 바로 아래인 AA+등급을 받아 왔다. 결과에 따라서는 일본 최고라는 도쿄대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도쿄대는 평가를 자처했다. 그 자체가 도쿄대의 변화를 말해 준다.

뉴스 3에서는 ‘권한’을 준 만큼 ‘책임’도 부과했다. 신임 학과장은 11월까지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고, 계획대로 이뤄내야 한다. 22명의 학과장 중 11명이 바뀌었다. 대학 관계자는 “일부 학과장은 자신이 없다며 그만뒀고, 일부는 학과장을 맡은 뒤 책임감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고 전한다.

국립대 법인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뭐 하나 된 게 없다. 일부 국립대 구성원들은 국립대 법인화는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공적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오히려 재정 지원을 늘려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라고 요구한다.

사립대가 많지 않던 시절에는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국립대라고 해서 사립대보다 더 나은 인재를 길러내는 것도 아니다. 지금대로 가면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확신도 할 수 없다. 일본 국립대도 우리와 같은 고민에서 출발해 법인화라는 결단을 내렸고, 일단 성공했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도, 거부할 명분도 없다. 고비용 저효율의 틀을 유지할 필요가 사라진 이상, 대학도 경쟁과 시장원리에 맡기는 게 순리다. 그래야 국립대가 사립대보다 먼저 글로벌 100개 대학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는 기대라도 할 수 있다.

교육부는 더 늦기 전에 만지작거리고만 있는 국립대 법인화 특별법을 상정해야 한다. 정 안 되면 서울대만이라도 먼저 법인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학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다. 대학의 틀을 바꾸지 않고 변화를 기대할 순 없다. 곧 침몰할 타이타닉호의 갑판에서 의자를 정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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