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국 가서도 국민을 편 가른 대통령

  • 입력 2006년 9월 19일 02시 59분


노무현 대통령은 13일 미국 의회 지도자들에게 “전시작전통제권 전환(환수) 반대자들은 옛날에 미 2사단을 인계철선으로 휴전선에 배치해 둬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다. 전시작전권 환수를 정당화하고 반대자들을 공박하는 일이 아무리 급해도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말까지 할 수 있는가.

인계철선(tripwire)이란 폭탄에 연결돼 있는 선(線)을 말한다. 이 선을 건드리면 자동으로 폭탄이 터지게 돼 있다. 주한미군도 이 선과 같아서 북한이 도발하면 미국이 자동으로 한반도 상황에 개입한다는 뜻이다. 인계철선은 미군의 자동개입 조항이 없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반세기가 넘도록 한미동맹을 지탱해 온 핵심 개념이다.

노 대통령부터 인계철선 역할을 충실히 해 온 주한미군의 확고한 전쟁 억지력 덕분에 변호사도 됐고 대통령도 됐다. 그 자신부터가 인계철선의 수혜자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전시작전권 환수 신중론자를 ‘휴전선에 인계철선을 친 사람들’로 몰고 ‘주한미군의 피를 담보로 안전을 누려 온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말은 결국 ‘전시작전권 환수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미국을 그런(인계철선) 위험에서 빼내려고 하는데, 반대론자들은 위험 속에 그냥 놔두려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국내에선 자주(自主)를 얘기하다가도 미국에 가면 친미(親美) 행태를 보이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미 의회 지도자들은 노 대통령의 이 ‘호의(好意)어린 발언’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고 한다.

앞으로 전시작전권이 환수되면 미군의 자동개입은 그만큼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이 공통된 관측이다. ‘유사시 미군 증원’ 약속을 받아 놓으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미군의 인계철선 기능을 확보해 두겠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그런 인계철선을 놓고 미국까지 가서 국민을 편 갈라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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