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마이클 오핸런]포기할 수 없는 자산 ‘한미동맹’

  • 입력 2006년 9월 22일 02시 59분


14일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의 두 대통령은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다. 과거와 달리 공개석상에서 의견 차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쌀 제공 중단은) 제재를 한 것과 같다”고도 말했다.

다툼이 좀 있더라도 두 동맹국은 핵심 관심사에서 연대의식을 보였다. 두 나라는 북한과 전 세계를 향해서 동맹은 건재하고, 한국 방위를 위해 함께 싸우며, 북한의 도발행위에 반대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동맹이라면 사석에서 이견이 존재하더라도, 공개석상에서는 냉정한(businesslike)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북한 해법을 놓고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걸 잘 안다. 워싱턴이 강경 노선을 걷는 동안 한국 정부는 꽤 따뜻하게 북한을 끌어안으려고 한다.

한미동맹이 일그러지면서 위기국면을 맞았다. “그렇지 않다”는 설명에 속아 넘어갈 관찰자는 없어 보인다. 가장 최근의 증거는 전시작전통제권을 언제 한국에 넘겨줄 것인지를 둘러싼 다툼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두 대통령은 전시작전권 문제는 ‘정치적으로’ 다룰 일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했다. 일견 맞는 이야기 같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모호한 표현은 거의 모든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이런 수준의 중대한 정책결정을 놓고 순수하게 ‘비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접근법으로만 해결책을 내놓는다는 일이 가능할까. 위대한 군사이론가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모든 전쟁은 다른 수단을 쓴 정치의 연장”이라고 가르쳤다. 전쟁은 본질상 정치적이다. 현대의 전쟁에서 어느 누구도 상대방을 궤멸하려 싸우지는 않는다. 언제든지 정치가 개입해 휴전시점을 결정하게 된다.

분명한 승자가 없었던 한국전쟁은 정치가 필요했던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과 이라크의 군 수뇌부가 휴전협상을 했던 1차 이라크전쟁(1991년)도 그랬고, 이라크전쟁도 정치적 마무리가 진행 중이다.

전쟁에서 정치를 분리할 수 없다면, 평시의 결정도 탈정치는 불가능하다. 주한미군 분담금 수준, 용산기지 이전 시점, 주한미군 규모 결정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다. 이런 결정은 인격체인 지휘부가 자국 사정이란 주관적 판단 아래 내린다. 100% 순수한 군사적 결정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 뭘 해야 하는가. 2009년, 2012년 아니면 제3의 시점을 놓고 다양한 군사전문가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양국의 전현직 군 장교의 입을 통해 양국 지휘부가 신중하게 구상했는지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전시작전권이 특정 날짜에 넘겨진 뒤 한미 양국군이 전쟁 중 오인사격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양국 사령관이 별도의 작전권을 행사하면서 좁은 하늘을 나눠 써야 하는 공군작전이 효과적으로 수행될까? 미래의 양국 사령관이 북한에 ‘양동 작전’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면서 다른 쪽으로 군사력을 모아 공격하는 일을 신속히, 효과적으로 해 낼 수 있을까? 향후 한국이 첩보통신 능력 향상을 위해 미국의 무기를 도입할 때 편협한 상업적 이익을 배제하고, 군사 효율을 위해 결정할 수 있을까?

4주 전 이 칼럼을 쓸 때 필자는 이런 일들이 2009년까지 마무리될 수 있을지 미심쩍었다. 지금은 2012년도 자신이 없다. 두 대통령은 지금까지 한미동맹이라는 귀중한 자산에 충실한 ‘청지기’ 역할을 잘못해 왔다. 감정적이고, 고집에 사로잡혀서, 잘못 판단해 한미동맹을 그르치면 안 된다.

뭔가 좋은 해법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시대에 앞서서 많은 희생을 했던 이들,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마이클 오핸런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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