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백은 잡히지 않는다. 관건은 어떻게 살아가느냐다.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목숨만 달랑 건진 꼴이어서는 생불여사(生不如死)다. 흑 25에서 29까지는 필연인데, 다음 백 30이 심했다. 이 대목에서 흑 ‘가’에 이을 바보는 없다. 흑 31로 역공을 가하자 백의 허점이 두드러졌고 이 9단은 엉겁결에 32로 연결했다. 그런데 바로 이 백 32가 백 30보다 더 심각한 수여서 바둑을 일거에 망쳐놓았다. 먼저 백 30의 수로는 참고도와 같이 중앙으로 머리를 내밀어야 했다. 흑해의 산더미 같은 삼각파도가 뱃전을 향해 덮쳐 오고 있는데 그물을 건져 올릴 틈이 어디 있는가. 따라서 백 32 또한 ‘나’로 퇴각하는 게 옳았다. 흑 33으로 진로가 막히자 백은 졸지에 답답해졌다. 백 34부터 그야말로 살기 위해 풍파를 헤쳐 가는 일엽편주(一葉片舟)가 되고 말았다.
해설=김승준 9단
글=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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