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인들이 일과 교육에 최선을 다했지만 미국 주류사회에 쉽게 편입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강 박사가 30여 년간 미국에서 살면서 발견한 것은 인종차별의 벽이 높기 때문이 아니라 주류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갖추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도자는 주류사회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권력은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믿고 있는 것에서 나온다”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지도자가 올바르다고 믿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공감하고 따라야 지도자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의 기준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도자의 가치관이 원칙에 입각한 방향에 역행하면 국민이 공감하고 지지하기 힘들다. 이러한 리더십은 이해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혼란을 초래할 따름이다.
요즘 태국 상황을 보면 지도자의 그릇된 가치관이 어떻게 사회적 혼란을 불러일으키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기존의 탁신 친나왓 정권에 대항하는 쿠데타가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그의 후원자였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까지 쿠데타를 승인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가족이 보유한 회사 주식을 팔아 1조8000억 원이 넘는 현금을 챙기면서도 세금 한 푼 내지 않은 탁신 총리의 부정 축재에 국민이 등을 돌린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자신을 비판한 언론 등에 소송을 남발해 국민이 그의 오만함에 진절머리를 내게 된 것이다.
반면 푸미폰 국왕은 어떠한 부정부패 스캔들에도 연루된 적이 없고 최고의 도덕성을 갖추고 있어 국민의 절대적인 존경과 지지를 받고 있다. 그가 이번 쿠데타를 승인한 것도 신음하고 있는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끝에 탁신 정권이 더는 신망을 얻지 못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도자가 말을 번복하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전가(轉嫁)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부정부패 척결을 외쳤지만 여전히 뇌물과 비리로 얼룩진 사건들이 발생하고, 이를 묵인하는 사회적 관행이 존재한다. 지도자가 근사한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하더라도 국민의 신뢰와 공감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는 권위를 획득하기 힘들고 계획된 일들을 추진하는 데 차질을 빚게 된다.
그렇다면 국민의 동의를 얻고 꿈과 희망을 심어 줄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국민을 가슴에 품은 뒤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힘들고 아프고 공허한 느낌 대신 밝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을 이끄는 지도자일수록 헌신할 줄 알아야 한다. 헌신을 실천으로 옮기려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아야 한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희생과 봉사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또한 긍정의 언어로 표현된다. 지도자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인정하고 칭찬하는 언어를 사용해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잠재력을 향상시킬 줄 알아야 한다.
‘호손 효과(Hawthorne Effect)’라는 용어를 낳은 ‘호손 연구’는 긍정적인 말의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작업 환경이 어떻게 근로자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조사한 이 연구에서 근로자들의 작업성과는 근무시간이나 임금이 아니라 주위의 관심과 상사의 주목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해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는 말의 힘이 여기에 있다.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친절한 말은 짧고 하기도 쉽지만 그 메아리는 오래가는 것이다.
어린(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담아서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이를 딱하게 생각한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 백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헤아리고자 애썼기에 세종대왕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임금이 된 것이다.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따뜻한 지도자만이 백성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아 이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풀며 함께 이기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이경숙 객원논설위원·숙명여대 총장 kslee@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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