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철희]‘강석주 보도’에 대한 자책

  • 입력 2006년 9월 27일 02시 55분


본보는 25일자에 “강석주 ‘北외교는 추락하는 토끼’”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다. 그러나 이 기사는 결국 오보가 됐다. 보도과정은 본보 26일자에 자세히 설명했고, 회사차원에서 사과도 했다. 그러나 이 기사를 취재했던 기자로서 여전히 자책이 남는다.

24일 오후 5시경 권위있는 동북아 안보전문 싱크탱크인 미국 노틸러스연구소 웹사이트에서 문제의 글을 처음 발견한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북한 외교의 오판을 ‘자아비판’하고, 군부 강경세력을 비난하는 생생한 발언들은 가위 충격적이었다.

군부 우위인 북한 사회에서 이런 발언이 가능할까.

필자인 로버트 칼린 씨에게 확인을 시도했지만 휴일이어서 연락처 파악조차 쉽지 않았다. 피 말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 내부를 손금 보듯 묘사한 대목들이나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정확한 설명으로 볼 때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믿기 시작했다. 하루를 더 기다리다 중요한 기사를 놓칠 수 없다는 유혹도 떨쳐내지 못했다.

마감시간이 임박한 오후 11시 15분. 연합뉴스 역시 “강석주 ‘北 최소 핵무기 5∼6개 보유’”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25일 0시 56분까지 13건의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진짜’라는 확신은 더욱 커졌다.

25일 오전 2시 20분경. 본보 워싱턴 특파원에게서 긴급 보고가 들어왔다. “가상 상황을 설정해 쓴 픽션”이라는 것이었다. 이 글이 처음 발표된 토론회에 참석했던 한 한국인 학자가 확인해 줬다는 설명이었다. 전언(傳言)을 최종 확인하기 위해 또다시 칼린 씨와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더는 확인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급히, 그러나 주저 없이 윤전기를 세웠다. 그때가 오전 2시 40분경. 기사에 ‘진위에 논란이 일고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지만 인쇄 완료가 얼마 남지 않은 때여서 대폭 수정하기는 어려웠다. 워싱턴 특파원을 통해 연합뉴스에도 전화해 “그 글은 픽션”이라고 알려줬고, 연합뉴스는 오전 5시 4분 ‘전문(全文) 취소’를 타전했다.

자책을 한다고 해서 실수를 돌이킬 순 없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실패 이야기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께 거듭 사과를 드린다.

이철희 국제부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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