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정부가 100채의 분양가를 평당 700만 원으로 끌어내렸다고 해 보자. 분양 후 아파트 값은 700만 원에 머물러 있을까. 그럴 리 없다. 분양가가 얼마든 아파트는 다른 데와 마찬가지로 1000만 원에 거래될 것이고, 동네의 다른 아파트 가격도 1000만 원 그대로일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운 좋게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100명이 평당 300만 원의 횡재를 했다는 사실뿐이다.
강제로 분양가를 끌어내린다고 주택의 시장가격이 낮아지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다. 길게 볼 때 주택의 시장 가격은 분양가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결정한다.
분양가가 단기적으로 주변의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게 따지자면 분양가를 낮추어도 여전히 문제다. 낮은 분양가가 청약 경쟁률을 높일 것이고, 그 때문에 잠시 주변 아파트 값이 동요할 수 있다. 분양가는 이래도 저래도 문제다. 원래 단기적인 가격 움직임은 예측하기도, 막기도 어렵다.
조금만 길게 보면 주택 가격은 수요 공급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금리가 낮아지면 집값은 뛰기 마련이다. 지난 5년이 그랬다. 수요가 줄어드는 연립과 단독주택의 값은 정부의 간섭이 전혀 없어도 오히려 떨어져 왔다. 백만장자의 수는 세계 최고의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재건축 억제다, 분양권 전매 규제다 해서 고급 주택의 공급을 억제하니 기존의 좋은 주택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뛸 수밖에 없다. 그게 버블세븐 지역이다. 재건축을 막아서 새 아파트의 공급을 줄이면 아무리 세금을 때려도 기존 주택의 값은 올라간다. 분양가 역시 억지로 낮추면 새 아파트의 공급이 줄어서 기존 주택의 가격이 오른다. 조금만 길게 보면 아무도 수요 공급의 법칙을 거역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의견을 뒤집은 원가 공개도 결국 분양가 규제가 목적이다. 분명히 지방마다 ‘원가심의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 것이다. 성격은 결국 분양가 규제 위원회가 될 것이다. 분양가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벗어나 운 좋은 ‘실수요자’에게 충분한 프리미엄을 보장하도록 책정될 것이다. 운 좋으면 나도 한몫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서 시민단체는 지지를 얻고 정치가는 표를 얻겠지만, 그것이 옳은 길은 아니다.
원가 공개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도 무관하다. 소비자는 집을 사기 위해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를 이미 갖고 있다. 기존 주택을 구입할 때를 생각해 보라.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아파트단지의 위치와 학군, 규모이고 조망과 건축자재의 수준 같은 것이 뒤를 따른다. 자재의 품질을 제외하고는 원가와 상관없이 판단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집주인이 원가를 공개하지 않아도 구매자는 수억 원의 돈을 내고 기존 주택을 살 수 있다. 새 아파트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새 아파트의 경우 건설업자가 당초 약속보다 열악한 자재로 지을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이라면 원가가 아니라 자재의 품질을 밝히게 하면 된다.
지금도 고칠 것은 있다. 분양가를 낮춰서 당첨자에게 횡재를 주는 것이 옳지 않듯이 건설업자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택지를 매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경쟁 입찰 같은 방법으로 해결할 일이지 원가 공개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집값을 낮추려면 택지 공급을 늘려서 새 아파트의 공급을 촉진하거나 금리를 높여야 한다. 좋은 아파트의 공급이 대폭 늘면 분양가를 어떻게 해도 주택 가격은 낮아진다. 분양가에 간섭하면 시장은 공급 축소와 높은 시장 가격으로 복수를 해 온다. 운 좋은 몇 명에게 특혜를 주는 대가치고는 너무 크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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