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해]‘괴물’의 종말

  • 입력 2006년 10월 3일 03시 00분


한국투자신탁과 대한투자신탁 국민투자신탁은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꿈의 직장’이었다. 정부가 대주주였던 이들 회사는 적자로 골병이 들었지만 임직원들은 금융권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았다. 3대 투신사는 여의도 증권가의 ‘거대 공룡’으로 불렸다. 정부는 이 ‘괴물’을 연명시키느라 막대한 뒷돈(공적자금)을 집어넣어야만 했다.

문제는 사장이 재정경제부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공무원이었다는 데에 있었다. 인사 숨통을 틔우기 위해 낙하산을 내려 보냈고 약점을 잡은 노조는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신임 사장이 겨우 회사 정문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때는 노조위원장과 모처에서 ‘비밀 회동’을 한 뒤였다.

이면 합의서에는 어김없이 특별 보너스라는 ‘당근’이 담겨 있었다. 사장이 바뀔 때마다 임직원의 복리후생 수준도 덩달아 높아졌다. 건강 증진을 명분으로 1년에 한 번씩 직원들의 보약 값을 대 주는 투신사도 있었다. 한 투신사를 인수한 기업인은 “전임 경영자가 노조와 이면 합의한 각서에 복리후생 등과 관련된 게 무려 17가지나 되더라”면서 혀를 찼다.

부실이 깊어 민간에 팔린 세 투신사는 구조조정을 당해 많은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주가 부양을 위해 정부가 세 투신사를 동원하면서 자산운용에 실패한 데다 낙하산 인사 폐해까지 겹친 결과였다.

최근 감사원이 발표한 한국은행과 주요 국책은행의 방만한 경영행태는 이들 투신사와 여러모로 빼닮은 데가 많다. 산업은행 총재, 수출입은행장, 기업은행장 등 국책은행장이 모두 재경부나 금융감독위원회 출신 낙하산 공무원이다. 더욱이 내부 살림살이를 감시하는 감사 자리도 대부분 과천에서 ‘한솥밥’을 먹던 재경부 식구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부실경영을 견제하기는 원천적으로 어려운 구도다. 심지어 민간 은행들의 이익단체인 은행연합회장도 재경부 낙하산이다.

이들 은행은 연초에 임금 가이드라인을 3∼5% 내외로 정하겠다고 생색을 내고선 연말쯤에 갖가지 명분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이러니 3년 동안(2002∼2004년) 임금 인상률이 30%를 훌쩍 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은 제자리걸음인데도 정부에서 출자받은 주식 값이 오르는 등 어부지리로 얻은 가외(加外) 이득으로 ‘돈 잔치’를 했다. 공적자금 덕을 본 우리은행의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연봉을 직접 정하고 한 해 12억6000만 원을 받아 갔다.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같은 다른 금융 공기업들도 이런 국책은행들의 못된 버릇을 따라 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퇴출되거나 다른 곳에 합병된 금융회사가 628개다. 정부가 휘두른 구조조정의 칼날에 하루아침에 직장을 빼앗긴 금융인 수만 명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금융 공기업 사람들은 나랏돈으로 흥청망청 자신들의 배를 불렸다. 정부 주도의 금융구조조정 명분이 빛 바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감독을 게을리 한 재경부 책임이 가장 크다. 민간기업의 지배구조를 탓하기 전에 자기 식솔들끼리 말아먹는 잘못된 국책은행 지배구조부터 뜯어고치는 게 순리다. “역사적 소임을 다한 공기업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는 전윤철 감사원장의 얘기가 ‘빈말’이 돼선 결코 안 된다. 이들의 ‘나눠 먹기’ 경영의 최대 피해자는 세금 내는 국민이 아니던가.

최영해 경제부차장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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