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한민국 비상사태다

  • 입력 2006년 10월 9일 19시 21분


북한의 어제 핵실험 강행은 한반도에 초대형 ‘핵 폭풍’을 몰고 왔다.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김정일 집단의 무모한 불장난이 우리를 6·25전쟁 이후 최대의 비상사태로 몰아넣었다. 한반도의 위기가 어디로 치달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 한반도는 비핵화가 아니라 사실상 ‘핵지대화’하고 말았다. 북은 그동안 고폭실험, 미사일 시험발사를 거쳐 이번의 핵실험으로 핵무장 단계에 진입했다. 북은 지금까지 추출한 20∼50kg의 무기급 플루토늄으로 이미 5∼10개의 핵무기를 제조,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소형화해 미사일에 장착하는 일만 남았다. 북은 세계를 상대해 이를 위협 수단으로 악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북을 감싸기에 급급했던 우리 정부의 햇볕, 포용정책이 전면 실패했음이 입증됐다. 북을 제대로 모른 채 ‘우리 민족끼리’에 도취돼 펴온 친북 자주정책의 귀결이 지하 핵실험이었다.

남북 평화공존을 다짐한 2000년 ‘6·15선언’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도 무의미해졌다. 정부는 올 2월 ‘한반도 평화체제의 제도화’를 안보정책의 목표로 정했으나 이 또한 휴지가 되고 말았다. 북에 속고 또 속아 결국 ‘핵 인질’이 될 판이니 목숨 바쳐 대한민국을 지켰던 선열들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다.

북한 정권은 대미(對美) 협상력을 높이고 ‘강성대국’ 이미지를 과시하며 체제 유지를 공고히 하려고 모험을 했을지 몰라도, 이는 판단 착오다. 국제사회는 북의 핵 보유를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북은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北핵실험 응분의 대가 반드시 치르게 해야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과거처럼 모든 것을 인내하고 양보하고 북한이 어떤 것을 하든 수용하는 것은 해 나갈 수 없다”며 “국제사회의 강경수단 주장에 대해 ‘대화만을 계속하자’고 강조할 수 있는 입지가 없어진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다. 대북 포용정책을 고집할 수 없게 됐음을 인정한 것이라면 달라진 행동으로 실패를 만회해야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미 의장성명을 통해 천명한 대로 강력한 대북결의를 채택할 것이다. 무력제재가 가능한 유엔헌장 제7장을 원용한 결의가 나올 수도 있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 입출항 선박의 공해상 검문 및 나포, 무역 및 금융거래 금지 등 초강경 제재에 나설 태세다. 일본은 어제 총리실에 북핵대책실을 즉각 설치해 가동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충격을 받고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본격화하면 우리도 동참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 않으면 북과 동류(同類)로 간주돼 고립을 면치 못한다. 미국의 도움 없이는 북의 핵 위협에 맞서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는 우리로서는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와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무엇보다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안보에 두고 북의 핵실험으로 초래된 위기의 실상을 국민에게 똑바로 설명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남북관계와 민족의 장래는 물론, 한반도와 주변정세 등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상황 대처 방안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밝혀야 한다.

대화와 협상으로 북의 핵과 미사일 개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었던 안이한 판단을 맹성(猛省)하고 대북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사업 등 대북 경협도 중단이 불가피하다. 민족의 장래에 어두운 핵구름이 드리워진 데는 8년 7개월간 친북정책을 편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책임이 매우 크다. 일방적인 퍼주기로 북을 변화시키려 했지만 돌아온 것은 핵과 미사일 위협이고, 국민의 대북 경각심과 안보불감증만 깊어졌다. 정부는 대북 지원이 군사적으로 전용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북의 핵 보유로 대북 억지력이 흔들리게 된 만큼 국가안보를 위한 강력한 군사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급하다.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와 한미연합사령부의 해체 추진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 절체절명의 국가위기 상황에서 섣부른 자주를 또 꺼내선 안 된다. 북이 국제사회의 제재에 맞불을 놓기 위해 한국을 인질로 삼아 크고 작은 군사적 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자본이탈 등 경제충격 막기, 美日협조 긴요

정부는 북의 핵실험이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긴급 경제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국제금융, 수출 등 5개 분야별 비상대책팀을 구성했으나 이것만으로는 미흡하다. 벌써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투매현상이 잇달아 주가가 폭락하고 원화 가치가 급락(원화 환율이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하다. 국내 주식시장의 40%를 차지하는 외국인투자가들의 일부라도 급작스럽게 빠져나갈 경우 1997년 외환위기 때와 같은 위험에 빠질 우려도 있다. 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협조를 구해 외국자본의 동요를 사전에 방지하도록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안이한 대응으로 현재의 난국을 부른 정부 외교안보팀의 쇄신도 필요하다. 그들에게 국가안보를 맡겨 놓고는 국민이 발 뻗고 잘 수가 없다. 노 대통령부터 자신의 대북 인식과 발언에 문제가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실효성 없는 햇볕정책의 폐기를 공식 천명해야 한다. 국민도 이제 ‘민족 자주’의 허구성을 깨닫고 우리가 직면한 엄혹한 안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친북 좌파세력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통일이 되면 북핵도 결국 우리 것이 된다”는 허황된 논리는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남남(南南) 갈등도 경계해야 한다. 이런 갈등이야말로 북이 바라는 바다.

대북정책 전면수정, 작전권 논의 즉각 중단을

일본과 대만 등 동북아 주변 국가들도 핵무장에 나설 개연성이 있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어제 국회에서 “미국이 대한(對韓) 핵우산 제공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안심할 수 없다. 열강(列强)이 한반도에 대한 간섭을 본격화할 경우 민족의 진로를 외세에 맡겨야 했던 100년 전 대한제국 말의 악몽이 재연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에 나설 개연성도 없지 않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실제 그런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한다. 추가 핵실험은 북의 자멸을 더 재촉할 뿐이다. 북한의 핵무장을 포기시키는 길은 정부와 국민, 대한민국과 국제사회가 한 덩어리가 돼 그것이 ‘잘못된 판단’임을 확실히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북정책에 대한 정부의 전면적인 반성과 수정 못지않게 국민도 깨어 있어야 한다. 한민족의 장래를 책임지는 것은 유한(有限)한 정권의 몫이기 전에 국민 모두의 책무이다. 장차 후손들로부터 “그때 당신들은 민족의 재앙을 막기 위해 무슨 노력을 기울였느냐”는 준엄한 질책을 받는 못난 선조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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