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종섭]‘만종’ 농부처럼 국민 섬기는 정치

  • 입력 2006년 10월 11일 03시 00분


프랑스의 파리에서 자동차로 1시간쯤 달리면 바르비종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광대한 퐁텐블로 숲으로 이어지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전원마을로 19세기 중반 루소, 밀레 등 바르비종파 자연주의 화가들이 살며 그림을 그렸던 고장이다. 이들 그림 중 하나를 말해 보라면, 누구나 쉽게 드는 것이 단연 ‘만종(L'Ang´elus)’이다.

바르비종의 넓은 샤이 들판에서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바구니와 손수레를 땅에 놓고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고개를 숙여 기도하는 아내와, 일할 때 쓰던 쇠스랑을 땅에 꽂아 세우고 모자를 벗어 든 채 경건하게 마주 서 있는 농부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워낙 유명한 이 그림은 전 세계적으로 복제돼 각 나라의 시골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지난 시절 우리네 시골 이발소에도 흔히 걸려 있던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19세기 말 미국에 1000프랑에 팔렸던 그림을 80만 프랑에 되샀을 만큼 자존심이 강한 프랑스 문화국민의 힘이 생각난다. 물론 서천(西天)으로 떨어지는 낙조의 대지에 서서 감사의 시간을 갖는 경건한 농부의 모습에선 시간을 초월한 불멸의 감동이 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루브르 박물관에선 모두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이 그림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 있다.

북한이 급기야 핵실험을 하고, 나라가 갈기갈기 찢어진 채 온 국민이 핵무기 앞에서 나라의 안보와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게 된 이 마당에 이 그림이 다시 생각나는 것은 국가경영도 농사와 같고, 나랏일을 하는 사람도 기도하는 농부와 같이 지극히 진지하고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해먹자 공화국’ 한국 정치판

나라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자신의 정권 유지나 표를 얻고 인기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사용하다 결국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간 것이나, 나랏일을 자기 패거리들끼리 권력을 나누어 가지고 한판 해 먹는 ‘해 먹자 공화국’의 일쯤으로 여겨 온 지금 이 순간까지의 한국 정치판의 천박한 모습들을 보면 ‘만종’의 경건한 농부에게선 차라리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자신이 농부처럼 나랏일을 농사짓는다고 생각한다면, 나라가 준 지위를 누리면서 마구잡이로 막말을 하고 국민을 업신여기고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지는 않는다. 자기의 땅에 씨 뿌리고 밭을 갈고 더 많이 수확하여 가족을 행복하게 하려는 농부라면 마구잡이로 씨를 뿌려 대고 아무 때나 밭을 갈아엎고 이웃들을 이간질하고 멱살잡이로 싸움질을 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내 몸 하나는 비록 지치고 힘들지만 내일을 위해 한 줄의 밭고랑이라도 더 애써 매고, 한 톨의 씨앗도 소중히 여기며, 노동의 끝에는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불쌍한 사람들과 대지에 기도하는 것이 농부의 마음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러 사람이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오로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합종연횡을 생각하고, 온갖 모사꾼이 또 분주히 설쳐 대기 시작한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일도 나랏일을 할 사람을 뽑는 것이고, 대통령이라는 자리도 결국 국민을 위해 밭 갈고 씨 뿌리며 농사를 짓는 자리인데, 또 이것이 권력투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합종연횡이 지역주의를 부추겨 나라를 갈라지게 하고 국민이 갈가리 찢어져 싸우게 되면 우리가 지금까지 겪었던 ‘잃어버린 시간’은 되찾지 못한다.

이념이니 주체니 진보니 보수니 하며 아귀다툼을 하고 사실은 권력과 돈을 놓고 서로 싸우는 사이에 경제는 엉망이 됐고, 젊은이들은 일할 자리도 구하기 어렵게 돼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국가안보는 6·25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헤쳐 모여’ 전국정당 만들려면

이런 상황에서 대선이 또다시 과거와 같은 굿판으로 변질되면 희망이 없다. 이제는 그간의 실패를 교훈 삼아 진정으로 찢어진 사회를 통합하고 나랏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찾아야 한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겸허함을 가지고, 다시 경제를 살리고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며 미래에 대해 강한 비전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는 검증된 사람을 대통령에 앉혀야 한다. 이런 일을 실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만 합종연횡도 지역통합도 의미가 있으며, 기존 정당들을 해체하고 전국정당을 만드는 ‘헤쳐 모여’도 의미를 가진다. 이 시대 우리가 ‘만종’의 농부를 다시 찾는 까닭이다.

정종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 jscho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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