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다녀간 많은 노벨상 수상자에게서 여러 충고를 들었지만 어떤 교훈도 듣지 못했던 게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인류 발전에 기여할 원대한 생각을 젊은이에게 키워 주고 있었는지, 자신감을 심어 주고 꿈에 충실하도록 길렀는지 질문해야 한다. 아직도 조급하고, 분위기 속에 안도하려 하고, 적당히 타협하는 길을 가르치는 게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
최근 연세대에서 열린 노벨포럼에서 아론 치에하노베르 교수는 노벨상이 연구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노벨상은 연구에 충실하다가 얻어지는 덤이라고 말했다. 연구자가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자유스럽고 성실해야 좋은 연구를 할 수 있고, 이런 연구는 인기 있는 분야에서보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독창성을 발휘한다고 지적했다. 연구를 하면서 생기는 고독을 경험하고, 이런 환경에서 굴하지 않는 자세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좋은 멘터(mentor) 즉, 상담인 내지는 스승이 중요하다고 했다.
교육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한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자라서 공부하고, 거기서 학위를 받으며 자란 치에하노베르 교수뿐만이 아니다. 리언 레이더먼 컬럼비아대 교수가 서울대에 초대되어 왔을 때 그는 자신의 노벨상 수상에 세 가지 중요한 요인을 들었다. 올바른 사람을, 올바른 시기에, 올바른 장소에서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가. 치에하노베르 교수는 자유스럽게 연구하기 위해서 국가의 기초연구지원비 이외에 다른 연구비를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연구비를 받는 순간부터 기업의 요구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국가 지원 기초연구지원비는 다른 지원비보다 3배 더 많다. 한국은 전체 교수의 8분의 1에게만 이런 지원을 한다. 또 선진국에서는 한 번의 심사로 3년 정도 계속 지원하는데 우리는 대부분 연구지원 단위가 1년이라 해마다 연구비 신청에 신경을 쓰게 돼 있다.
멘터 정신은 더 열악하다. 상대를 북돋아 주고 돌봐 주는 데 언제부터인지 인색해졌다.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과학이나 수학에도 분석적인 행위와 직관적인 행위가 모두 중요하며, 경험에 의한 직관적인 판단이 결여된 활동에는 단결력이나 추진력이 부족하다고 ‘과학의 가치’라는 책에서 주장한다. 경험에 의해서 얻어지는 좋은 직관에 의한 판단이 선배의 영역이다. 선배가 없는 후배는 그만큼 어렵다.
올바른 사람을 올바른 장소와 올바른 시간에 만나서 같이 의논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환경이 학문 활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동양에서 먼저 설파했다. 이런 지혜를 살리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열매가 맺기를 기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학문은 도박이 아니다. 한두 곳에 걸어 놓고 대박이 터지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너그럽고 자유스러운 연구 환경은 사치하고 우쭐대는 졸부를 만들지 않는다.
주위를 살펴보면 묵묵히 연구하고 교육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이 더 용기를 얻어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 전력하도록 도와야 한다. 너무 빨리 열매 맺기를 기대하고 일일이 간섭하면 안 된다. 호기심에 의해서 인도되고 성실하게 추진하도록 보장해 주면 된다. 이것이 멀지만 확실한 길이고 학문의 정도가 아닌가.
노벨상을 수상한 나라가 연구비가 많아서 수상자를 배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난하지만 자유스러운 파키스탄과 이집트가 노벨상 수상자를 만들었다.
요즘 거론되는 인문학의 부흥운동이나 새로운 개념의 과학도시를 만들자는 운동은 자유스러움을 다시 찾고 서로 다른 의견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계기를 회복하자는 움직임이다. 이런 운동을 통해 환경이 구축되고 난 이후에야 우리도 노벨상을 기대할 수 있다.
민동필 서울대 교수·물리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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