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태우]北核국민이 막아야 한다

  • 입력 2006년 10월 16일 02시 58분


9일 핵실험으로 북한은 아홉 번째로 핵클럽에 가입했다. 예상했던 대로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라는 두 자루의 칼을 꺼내 들었다. PSI는 의심쩍은 선박을 선별하여 차단하는 일종의 해상차단작전(MIO)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핵실험은 국내외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올 엄중한 사태이지만 내일 당장 참극을 가져오는 절박한 사태는 아니다. 우선 필요한 것은 국민적 단합이다.

핵실험은 즉각 보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핵 문제의 발단에 대해 미국의 대북 압박이 주범이라는 주장과 포용정책이 불러온 화근이라는 주장이 맞섰다. 부질없는 책임 공방이다. 발단은 북한 체제에 있다. 주민의 삶의 질을 중시하는 정부가 통치하는 민주화된 북한이라면 미국이 압박할 이유도 북한이 핵으로 미국을 억제할 필요도 없어진다. 핵으로 체제를 지키려는 북한과 이를 저지하는 미국 간의 대결이 문제의 본질이다. 당연히 햇볕정책이 북핵을 불렀다는 주장도 당치 않다. 이보다는 ‘햇볕정책이 북핵을 중단 또는 지연시키는 데 기여하지 못했고 오히려 핵개발에 기여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말이 정확한 평가이다.

북핵의 유해성과 관련해서 ‘우리를 겨냥하지 않으므로 무해하다’, ‘통일되면 민족자산이다’, ‘우리도 핵무장을 하든지 미국의 전술핵을 재반입하자’는 등의 주장도 각각 좌파적 또는 우파적 망상이다. 북핵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약화시키고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부추기는 시한폭탄이다. 또 남북한 군사균형을 변질시키고 남북 관계를 왜곡시킨다. 핵무기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주눅 들게 만드는 정치 외교적 무기이기 때문이다. 주변국의 동의 없이 통일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북핵은 통일 후 민족자산’을 운위하는 주장은 심히 어리석다. 어느 주변국이 핵을 가진 통일한국을 바라겠는가. 세계와의 교류를 통해 번영해야 하는 한국의 처지를 헤아린다면 핵무장론도 정답이 아니다.

대책과 관련해서도 대화와 햇볕정책의 지속을 주문하는 측과 햇볕정책 폐기를 요구하는 측이 대립한다. 해답은 순리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이 동족과 주적이라는 두 얼굴을 가지는 한 우리의 대북정책은 화해협력과 안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로 굴러갈 수밖에 없다. 동족의 얼굴을 바라보는 햇볕정책은 하자 없는 정책이지만 안보에는 단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의 태도에 따라서 미소를 보낼 수도 화를 낼 수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한국이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북한이 큰 도박을 감행한 지금은 미소를 보내야 할 때가 아니라 화를 내야 할 시점이다. 제한된 역량으로 남북 공조와 국제 공조 사이에 갇혀 있는 한국으로서는 좀 더 국제공조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당장 안보 공백을 막기 위해 한미동맹이 제공하는 핵우산과 국제사회의 대북 억제력을 활용해야 한다. 경제활동 위축을 방지하기 위해 ‘확고한 핵우산’이 포함된 ‘한미안보선언’ 같은 것도 추진해 볼 만하다. 군사력의 과학화와 재래무기 첨단화를 통해 독자적 대북 억제력을 함양하는 일은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국제공조를 위해서는 PSI 참여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군사충돌이 우려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핵 인질 상태로 빠져들 것을 뻔히 알면서 북핵을 용인해야 하느냐는 지적도 설득력을 가진다. ‘참여도 최소한을 전제로 한 PSI 참여’가 우리의 선택일지 모른다.

대북정책도 핵실험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 현금 지원을 계속하는 것은 곤란하다. 협력채널이란 한번 중단하면 재구축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주저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국민이 나서야 한다. 핵실험을 했는데도 금강산을 구경하겠다고 장사진을 이루는 남한 사람을 보고 북한 당국이 뭐라고 하겠는가.

핵실험이 있던 날 “이제는 포용정책만 옳다고 하지 않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서, 그리고 ‘벼랑 끝 핵외교는 협상용일 뿐이므로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고 외쳤던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북한에 몇 개의 핵무기가 있을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잠시 상념에 잠겨야 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부질없는 보혁 논쟁이 정리되고 온 국민이 한 마음이 될 수 있다면, 무조건적 대북지원이 스스로의 대북 지렛대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리고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장병의 희생이 값진 사실임을 느낄 수 있다면, 핵실험 사태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로 다가올 것이다.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이제라도 사슴을 보고 사슴이라 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북핵을 극복해 가는 첫걸음이다. 지금은 핵문제의 중대성을 인식하면서도 한 치의 착오도 없이 각자의 일에 열중하는 똑똑한 국민의 힘을 보여 줘야 할 때이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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