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계획은 치밀한 투기대책까지 묶어 발표해도 투기를 유발한 사례가 많았다. 주택행정 실무 경험이 있는 추 장관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게다가 돈 흐름과 주택 수급 동향에 극도로 민감해진 요즘 시장 상황에선 정책 당국자의 말 한마디가 엉뚱한 파장을 부를 수 있다. 그런데도 명색이 주택정책 최고책임자가 설익은 신도시 계획을 덜컥 발설해 집값을 폭등시켰다면 책임이 무겁다.
정책은 내용만큼이나 입안 및 발표 과정도 중요하다. 정책의 소비자인 국민과 시장 상황을 감안하고 부작용과 돌발변수까지 미리 고려해야 한다. 정책 효과는 죽이고 후유증은 키운 당사자가 장관인데 청와대의 조사와 총리의 질책만으로 슬쩍 넘어간다면 책임행정은 더 멀어지고 ‘아마추어 관료’들의 무책임 증후군만 확산될 것이다.
정부도 밝혔듯이 주택정책은 양적 공급 확대나 투기 단속이 전부가 아니다. 국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고품질의 정책이 절실한 분야다. 그런데 작년 4월 17대 총선에 차출됐다가 낙선한 뒤 ‘보은(報恩) 케이스’로 발탁된 추 장관은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코드 정책의 좌충우돌 행정’만 보여 왔다. 아파트 분양가 공개, 발코니 확장 허용, 판교 신도시 분양 등 국민의 관심이 쏠렸던 사안마다 ‘오락가락 행정’을 지겹게 연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1년 반 동안 그에게 진 빚을 갚았는지 모르지만 국민 가슴엔 겹겹이 멍이 들었다.
추 장관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옳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대북정책 실패로 나라와 후손에게 부담을 지우고도 “정책 실패가 아니라 정쟁(政爭) 탓에 물러난다”고 강변했지만 추 장관은 “투기꾼 때문에 물러난다”는 식의 핑계는 대지 말기 바란다. 정부는 부동산 정책의 총체적 실패에서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작년 8·31 부동산 종합대책, 올해 3·30 대책 등의 반시장적 무리수를 이번에 잘 고친다면 과오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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