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사정이 좋아지려면 좋은 주택을 많이 지어 공급해야 한다. 국민 절반 이상이 단칸방에서 살던 이 나라에서 이제 집집마다 아이들에게 방 하나씩 내어 줄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주택을 많이 지어서 공급했기 때문이다. 분당, 일산 등의 수도권 신도시뿐만 아니라 지난 30년간 지방 곳곳에 만들어진 새 도시들은 국민의 주거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 주었다.
신도시는 주택 가격 안정에도 크게 기여했다. 1980년대 말 경이적인 경제성장과 더불어 집값도 기록적으로 뛰어오른다. 올림픽을 치르던 1988년 한 해 동안 전국적으로 14.3%의 상승률을 기록했고 서울의 아파트 값은 거의 두 배가 뛰었다.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도 속출했다.
주택 공급 늘려야 집값 안정
그런데 신기하게 분당 시범단지 입주가 시작되던 1991년부터 서울의 강남을 시작으로 해서 전국의 주택 가격이 떨어진다.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1990년을 100으로 할 때 1991년에는 94.9, 1992년에 89.8, 1993년에 87.4로 계속 떨어진 후 몇 년간 그 수준을 유지한다. 여러 신도시와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의 공로임이 분명하다. 투기억제책이나 높은 세금은 오히려 주택 공급을 방해했을 뿐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토지가 작은 면적으로 조각조각 나뉘어 여러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개별적인 개발 행위는 난개발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신도시 방식은 난개발을 막으면서 계획적으로 도시 용지를 공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수도권 5개 신도시, 광주의 상무신도시, 대전의 계룡신도시, 그 자체가 신도시인 창원시 등 우리나라의 어디를 보더라도 신도시만큼 잘 계획된 도시는 없다. 신도시가 낙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들 중에는 가장 나은 대안이다.
도시를 새로 만들어서 살 곳의 공급을 늘리는 일은 당장은 골치 아픈 일이다. 우선 신도시가 될 동네의 땅값이 미친 듯이 뛰어오른다. 건설 물량이 많아지면 인건비가 비싸지고 건축자재 품귀 현상도 나타난다. 보상을 더 많이 해 달라고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최소 3년 동안 그런 일에 시달린 후에야 비로소 효과가 나타난다. 분당, 일산 등 수도권 신도시도 사업에 착수한 것이 1989년이었는데 그로 인해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1년 말 입주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도시 사업은 늘 강력한 반대론에 부닥친다. 1980년대 말 5개 신도시 사업 때도 수많은 사람이 신도시 정책을 비난했다. 그 후로는 한동안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신도시 기피 현상이라 부를 만한 분위기도 생겨났다.
신도시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주택 가격 안정을 이루었으니 반대론자 중 한 사람쯤은 반성을 할 만도 한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80년대 ‘5대 신도시’ 본받아야
그래서 어떤 위정자든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투기억제책이나 세금 올리는 정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공급 없이 주택 사정이 좋아질 수 없다. 세금으로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서민에게 나누어 줄 수는 있겠지만 주택 사정을 좋게 만들 수는 없다. 매매가격을 잡기 위해 전세금은 오히려 올려놓는 식의 정책이 되고 만다.
어쩌면 지금의 주택난은 1990년대 내내 주택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주택의 공급, 특히 강남 수요를 흡수할 고급 주택지의 공급을 게을리 한 것에 대한 시장의 보복일지도 모른다. 절차의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라도 공급 카드를 꺼내 든 추병직 장관에게 ‘원론적인’ 차원에서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새로 만들어질 신도시가 모든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멋진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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