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경준]뒤틀린 ‘한국형 신도시’ 개발史

  • 입력 2006년 10월 3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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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도시 개발사(史)는 ‘졸속 입안과 건설→난개발과 투기바람→실패’의 연속이었다.

‘1기 신도시’는 1980년대 후반 ‘3저(低) 호황’의 결과물이었다. 국민소득이 급증하면서 주택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 집값과 전세금이 급등했다. ‘방 빼!’라는 말이 유행어였을 정도다. 주택문제는 노태우 정권을 위협했다.

놀란 노 정권은 주택 200만 채 건설사업을 추진했다. 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등 수도권 5개 신도시를 동시 다발로 조성하는 것이었다. 1989년에 시작돼 1991년 말 입주가 시작될 정도로 초(超)스피드로 진행됐다.

곳곳에서 부작용이 터졌다. 건설자재 값이 폭등하고 인부들의 몸값이 치솟았다. 부실시공에 바닷모래 논란도 일어났다. 1기 신도시는 분명 집값 안정에는 기여했지만 서울의 ‘베드타운’에 머물러 교통난을 심화시켰다.

1993년 임기를 시작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주택 200만 채 건설을 총체적 실패로 규정했다. 부동산시장 안정에 기여한 점은 무시한 채 신도시라는 말도 못 꺼내게 했다. 소규모 택지개발지구 조성계획을 언론이 ‘미니 신도시’라고 표현하면 건설교통부 공무원들이 쫓아와 “제발 빼 달라”고 애걸하는 촌극까지 벌였다.

건교부는 신도시를 건설하지 않고도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묘책으로 준농림지 제도를 고안해 냈다. 생산성이 낮은 농지와 임야를 주택용지로 개발한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논밭 한가운데에 아파트가 지어졌고, 교통 좋고 경관이 뛰어난 준농림지에는 어김없이 러브호텔이 들어섰다. 결국 이 제도는 난개발을 불렀다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건교부는 계획적 개발로 주택수요를 흡수하겠다며 판교 등 ‘2기 신도시’ 카드를 꺼냈다. 주택보급률이 높아졌으니 양과 질을 동시에 추구해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신도시를 추진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2기 신도시는 점차 변질됐다. 다닥다닥 붙은 고층 건물에 임대아파트가 마구 뒤섞여 강남 분당 등 기존 고급 주거지의 몸값만 높이고 말았다.

신도시 건설은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면서도 난개발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이다. 실제로 집값 안정 효과도 검증됐다. 다만 사전에 철저한 투기억제대책을 세우고, 도로 철도 등 사회 인프라를 갖춘 뒤 추진하는 것이 기본이다. 일본 도쿄(東京) 부근의 다마(多摩) 신도시는 구상에 10년, 건설에 40년이 걸렸다.

정권의 입맛에 맞춰 초단기에 뚝딱 해치우는 식이라면 ‘신도시=문제’라는 인식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일부 어설픈 세력에 신도시 건설 자체를 부정하는 빌미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형 신도시’의 오락가락하는 주기는 현 정권 들어 더 짧아졌다. 수요를 눌러 집값을 잡겠다는 전략을 펴다 최근 불쑥 인천 검단 등 신도시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더욱이 추병직 건교부 장관은 설익은 신도시 발언으로 한국형 신도시의 전과(前科)에 ‘별’을 하나 더 보탰다.

그런데도 추 장관은 2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언행에 대해 “주무장관의 재량”이라고 강변했다.

다음 달 초면 그는 건교부 장관이 된 지 만 1년 7개월이 된다. 역대 건교부 수장(首長) 중 최장수다. 이 정도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서글픈 한국형 신도시의 역사를 제대로 고쳐 써 봄 직도 하건만….

정경준 경제부 차장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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