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은 원-엔화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에 이어 국내 산업계를 덮친 큰 악재였습니다.
한 고비 넘긴 듯하지만 해외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전자업계는 ‘북핵 후유증’을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최근 기자들과 만난 조남용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부사장은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해외 바이어들이 건네는 첫마디가 ‘만약 한국에 전쟁이 나면 (삼성전자는) 어떻게 우리에게 반도체를 공급해 줄 것인가’입니다. 그들을 안심시키는 게 요즘 주된 업무입니다.”
한동안 전자업계에서는 반 우스갯소리로 “북한 핵미사일에 삼성전자 반도체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해외 바이어들도 그 여부를 삼성전자 측에 문의한다고 합니다. 바세나르 협약에서 ‘위험 국가’로 분류된 북한에 전략물자를 수출할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조 부사장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2위인 삼성전자의 점유율을 감안할 때 (중간 무역상을 통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만약 그렇다 해도 최신 제품이 아닌 오래전 제품일 것”이라고 기자들의 궁금증을 풀어 줬습니다.
북핵 후유증은 국내 중소기업들에 더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국내 한 MP3플레이어 회사 관계자는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해외 거래처를 안심시키기 위해 우리 회사 제품이 중국에서 생산되는 ‘메이드 인 차이나’란 것을 애써 강조합니다. 미국의 한 물류 유통회사가 예정된 계약을 북핵 사태 이후 취소하려하기에 중국의 공장을 보여 주고 나서야 최종 계약을 할 수 있었죠.”
국내 한 중소 내비게이션 회사 관계자도 “예전엔 제품생산계획만 보고 대출해 주던 금융회사들이 이젠 판매실적 예상 수치까지 요구해 투자는 꿈도 못 꾼다”고 했습니다.
답답한 것은 국내 금융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중소기업 대출을 공격적으로 하기도 부담스럽지만 이를 줄이면 은행 수익도 줄어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북핵 후유증이 다가올 겨울을 이래저래 스산하게 만들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