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의 부동산 파동은 경기 분당 및 일산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주택 200만 호 건설’로 일단락됐지만 요즘 또다시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서울 강남 아파트 값이 90% 올랐다느니, 강남 아파트를 한 채 사려면 평균적인 근로자가 최저생계비만 쓰고 68년간 모아야 한다느니 하는 기막히는 보도가 이어진다.
이런 상황은 국민을 좌절로 몰아넣으며 세상에 분노하게 한다. 일할 의욕을 꺾어 놓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성난 일부 누리꾼은 “투기의 주범은 정부가 아니냐”고 비난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투기를 유도하지 않았으니 ‘주범’이라는 비난엔 과도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말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집값을 잡겠다”면서도 들어맞지 않는 세금폭탄 정책에만 매달렸고,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에 집착해 수도권 주택 공급을 소홀히 했다. 최근에는 투기 대책이 빠진 인천(검단), 경기 파주 등의 신도시 ‘불쑥 발표’로 해당 지역 부동산 값을 들쑤셔 놓았다. 투기를 방치하고 방조한 ‘무능의 책임’이 태산처럼 무겁다.
노 정권의 실패가 부동산 문제에만 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날이 갈수록 청년실업은 심각해지고 저성장은 끝을 모를 지경이다. 복지 예산을 늘리고 있지만 빈곤층은 2년 새 25만 가구나 늘어났다. 기업이 그토록 호소하는 규제 완화에는 딴전을 피운다.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보다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돈이 더 많다. 외교안보에서의 편향과 미숙 때문에 안보는 흔들리는데 성마른 자주 타령이 국방비 부담을 한껏 키우고 있다. 여기에다 교육 정책의 혼선, 인사권 행사의 독선, 상습적인 편 가르기로 인한 갈등 증폭 등을 겹쳐 놓으면 참여정부의 총체적 실정(失政)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기야 이런 결과를 일부러 의도했을 정권이 있을까. 이 때문인지 여권 일각에서는 “현 정권과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386 출신은 비록 무능할지 몰라도 의도는 순수했다”고 두둔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정을 위임받은 정부가 무능한 것은 죄악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집권세력은 국민을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해 준다는 전제로 권력을 잠시 위임받은 존재다. 그 약속을 배신한 채 국민을 못살고 불안하게 했다면 정권은 정당성을 잃었을 뿐 아니라 배임의 죄를 저지른 것이다. 더구나 무능에 이념코드 편향까지 겹치니 국정이 더욱 어지러워질 수밖에.
정부의 무능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정책 실패로 국민이 겪는 상실감과 고통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