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의 동물원 나들이.
물개가 미끄러운 타일 바닥에 배를 밀면서 “꺽꺽” 소리 내며 재주를 부리는 동안 아이는 내내 까르르 웃었지만 어른은 물개의 ‘노동’이 안쓰러웠다.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솔로몬 왕의 반지를 얻는다면 물개에게서 어떤 말을 들을 수 있을까.
현대인에게는 익숙한 제도인 동물원은 탐험과 발견시대의 발명품이다.
그 시대 동물원은 아이들에게만 꿈의 공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동물원으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빈 쇤브룬 궁전 안의 동물원은 17세기 열대식물원과 함께 만들어졌다. 밀림에서 잡혀 온 코끼리와 오랑우탄은 ‘제국’의 시민들에게 탐험하고 정복해야 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는 ‘판타지’의 실체였다.
한국사에 근대적 형태의 동물원이 등장한 것은 대한제국이 저물어 가던 1909년 창경궁에 동물원이 생기면서다. 1984년 경기 과천시에 서울대공원이 조성되면서 창경궁의 동물들이 모두 이사를 가기까지, 창경궁의 옛 이름 창경원은 한국인에게 ‘코끼리 비스킷’을 자동적으로 연상시키는 단어였다.
그 창경궁에서 이사 온 서울대공원 동물들의 ‘호적조사’가 최근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최고령인 코끼리 ‘자이언트’의 나이는 쉰다섯 살로 밝혀졌고, 롤런드고릴라인 ‘고리롱’은 마흔한 살이다.
나이는 들었어도 175cm, 170kg의 거구가 주는 위압감이 만만찮은 ‘고리롱’은 풍선을 든 관람객만 보면 우리의 벽을 두들기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긴 세월을 서울대공원에서 살아왔지만 사육사들도 풍선에 대한 고리롱의 반응이 장난인지, 분노인지, 두려움인지 분명히 알지 못한다고 한다.
일찍이 문화비평가인 존 버거는 동물원을 관람해 본 사람 대부분이 맞닥뜨린 당혹감을 단 한 줄의 문장으로 폭로했다. 기린의 관심을 끌기 위해, 코끼리를 유혹하기 위해 제 아무리 소리치고 먹을 것을 던져 보아도 ‘동물들은 관람객들을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온 동물들의 시선은 어디를 향한 것일까.
이번 주 1971년 만들어졌던 서울의 명소 남산동물원의 철거가 시작됐다. 일제가 해체한 서울 성곽을 복원하기 위해서다. 남산동물원에 수용됐던 일본원숭이 등은 뿔뿔이 전국의 동물원이나 학교로 흩어졌다.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코끼리를 타 보는 일도 어렵지 않게 된 세상에 그림책에서 본 동물을 눈앞에서 보는 것이 신기한 아이들이 아니라면 더는 동물원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을 부추기는 공간은 아닌 셈이다.
소장 동물에 대한 기초조사를 마친 서울대공원 측은 “노후한 서울대공원 동물원 우리를 더욱 자연과 흡사한 환경으로 바꿔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세계 각국 동물원들은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종(種) 다양성을 보전하는 공간으로, 아이들이 자연을 이해하는 공간으로 동물원의 운영 목표를 바꿔 가고 있다.
비글호를 타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했던 찰스 다윈은 “인도코끼리가 가끔 운다고 하더라”고 했다. 동물원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은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다른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종의 하나일 뿐이라고 자각하는 ‘관계 맺기의 진화’일지도 모른다.
정은령 사회부 차장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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