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당 또한 김낙중 공동대표가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과 관련해 구속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으면서 조직이 큰 타격을 받았다. 이번 간첩사건에도 민노당의 주요 간부가 연루돼 있는 등 북한이 민노당을 표적으로 삼은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민노당이 화낼 대상은 北정권
민노당의 내부 정보를 얻고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간부를 포섭한 북한 정권에 대해 민노당은 격분해야 한다. 북한 공작의 최대 피해자인 민노당은 북한과의 단호한 선 긋기에 나설 수 있는 위기 속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그러나 민노당은 이번 사건을 조작과 탄압으로 규정짓고 자신을 농락한 북한과의 만남을 강행하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번 사건을 북한의 각별한 관심 표현으로 반길 민노당 내의 친북 민족해방(NL)파는 논외로 하더라도, 북한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한결같은 침묵은 이해할 수 없다.
북한과 연계된 지하조직 민혁당에 몸담았던 필자의 경험상 공안 관련 조직사건의 관련자는 조직을 보호하고 중형을 피하기 위해 일단 부인한다. 수사 당국은 공소 유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증거주의에 따라 신중하게 접근한다.
대북 유화정책이 국가정보원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사건 조작은 상상조차 어렵다. 남북의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진 이 시점에 무슨 간첩이냐는 여론도 있지만, 시대착오 또는 일탈 현상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민노당은 재판부의 판단이 나오기 전에 섣부른 조작 운운은 삼가야 했다. 유죄 판결을 받으면 민노당은 도대체 어떻게 책임지려고 이런 무모한 대응을 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과거 재야 단체는 구성원 중에 간첩 혐의자가 나오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조건 ‘색깔론’과 ‘공안 탄압 분쇄’를 내걸고 조직 보호에 나섰다. 한때 20%의 지지를 얻고 원내 3당의 위치를 점했던 정당이 재야 시절의 방식을 답습한다면 끝없는 추락만 계속될 것이다.
북한에 도착하자마자 “기쁨과 설렘으로 마음이 벅차오른다”고 밝힌 데 이어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를 숙연한 모습으로 방문하고, 내부의 북한 정보망을 밝혀 준 국정원에 삿대질을 하는 민노당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느낌이다.
민노당을 초청한 북한 조선사회민주당은 광복 직후 김일성 그룹의 최용건이 공산당원 신분을 감추고 주도했던 민주당의 후신으로, 껍데기뿐인 노동당의 외곽 단체이다. 대남 공작을 하는 통일전선부 소속인 이들은 북한을 찾은 민노당 간부들이 내부 회의에서 한 발언을 이미 간첩 조직을 통해 보고받았을 것이다.
방북은 가장 어리석은 행동
방북해서 이번 사건의 진위를 직접 확인하겠다는 민노당의 언급에는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간첩의 존재를 결코 시인하지 않는 북한을 상대로 도대체 무엇을 확인하겠다는 것일까? 민노당 지도부가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얄팍한 수를 쓰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서구 좌파의 운명을 둘로 나누는 계기가 됐다. 다수의 좌파가 침공을 비판하는 가운데 침묵으로 협조한 세력은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몰락의 길을 걸었다.
레닌은 속이기가 쉬우면서 동시에 친(親)소련의 열정으로 불타는 서구 좌파를 ‘쓸모 있는 바보들’이라고 조롱하였다. ‘한반도에서 언제라도 전쟁을 일으켜 보겠다는 미국과 일본의 준동’을 평양 도착 성명으로 발표한 민노당이야말로 김정일의 쓸모 있는 바보들이라는 생각이다.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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