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중국은 급변하고 있다. 연해 도시 지역에서는 고기술 숙련 노동력이 부족해 아우성을 치고 있다. 가전제품의 하이얼과 TCL, 컴퓨터의 레노보와 베이다팡정, 통신장비 분야의 화웨이와 중싱, 통신서비스 업종의 차이나 텔레콤, 유니콤 등 우량 기업은 해외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는 한편, 다국적 기업과 기술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시스템 정비… 혁신국가 건설 온힘
정부는 정부대로 ‘혁신(創新)국가의 건설’을 11차 5개년 규획 중점 목표의 하나로 내세우고, 자주혁신(自主創新)을 촉진하기 위해 시스템과 법 제도를 바꾸는 중이다. 공상행정관리국은 매년 명품 브랜드 평가대회를 개최해 성(省) 간 브랜드 경쟁을 부추긴다.
기업은 ‘블루오션 전략’의 저자인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한편, 주요 경영대학원에는 블루오션 전략 강좌가 개설되고 있다. 중국 내에 부는 블루오션 찾기 열풍은 지난해 5월 번역된 ‘블루오션 전략(藍海戰略)’이란 책이 50만여 권, 해적판을 포함하면 100만 권 이상 팔린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결과 중국 기업 경쟁전략의 틀과 시스템이 바뀌고 있으며, 외국과의 기술 협력, 자체적 기술 혁신으로 가격 파괴가 일어나면서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한국 상황은 어떠한가? 건설교통부의 어설픈 신도시 개발정책 발표로 수도권엔 다시 부동산 투기 광풍이 휘몰아치고, 산업으로 흘러들어가야 할 자금이 부동산 투기에 몰리고 있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은 사법부와 검찰의 대립으로 인해 갈수록 미궁으로 빠져들고, 북한 핵 문제와 투자 환경의 악화로 외국인이 한국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외국인 투자 유치 순위는 2004년 16위에서 지난해에는 27위로 11계단이나 추락했다. 외국인은 연초부터 12조 원 가까운 액수를 팔아 치우며 한국 증시를 떠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북핵 문제와 ‘햇볕정책’의 공과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면서 좌우 이념투쟁에만 열중한다. 정부 역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 공약은 어디로 갔는지 정부 조직은 갈수록 비대해지고,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민의 세 부담만 늘어난다. 더욱이 차기 대선을 겨냥한 정부의 선심성 정책 발표 때문에 경제 주체의 의사결정에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자중지란 한국 외국인들 떠나
중국이 과거 중화(中華)의 영예를 되찾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혼연일체가 되어 뛰는 동안 한국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이다. ‘북핵 문제’ 등 지정학 리스크는 일시적 노이즈(noise)가 될 수는 있지만 국민경제 발전의 근본적인 걸림돌은 아니다. 기업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규제 혁파, 국내 투자환경 개선과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정부의 획기적인 시장친화적 정책 조치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부와 정치인은 전시행정식의 정책 발표와 사변적 이념 논쟁을 떠나, 실용적 관점에서 국리민복의 증진과 메가콤피티션(mega-competition)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시장경쟁 시스템의 구축을 위해 배전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정책 혼선이 지속될 경우, 내년 4.5%대 경제성장률 달성은 물론이고 국민경제의 생존 가능성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김익수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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