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황우석 그 후

  • 입력 2006년 11월 15일 03시 00분


지난해 11월 15일 미국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튼 교수가 갑자기 한국의 ‘국민 과학자’이던 황우석 서울대 교수와 결별하겠다고 선언할 때까지만 해도 ‘황우석 줄기세포’가 희대의 사기극이 될 줄은 짐작조차 못했다. 이어진 황 교수의 공직 사퇴, MBC ‘PD수첩’이 제기한 ‘난자 매매 의혹’과 ‘줄기세포 조작 의혹’은 연말연시의 모든 모임을 황우석 토론장으로 만들었다. 온 국민이 황우석을 지지하는 ‘황빠’와 반대하는 ‘황까’로 나뉠 정도였다. X파일의 제목처럼 ‘진실은 저 너머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줄기세포 의혹은 특허 논쟁, 국익 논쟁, 취재윤리 논란까지 불러일으키며 나라를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몰아갔다. 베이징(北京)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에서 폭풍우가 친다는 나비효과처럼 파장은 끝이 없었다. 서울대 조사위원회 발표로 ‘줄기세포는 없다’는 진실이 드러났을 때 국민은 허탈감과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분신자살자가 나타나는 등 집단 광기의 후유증은 크고도 깊었다.

▷그로부터 1년. 잃은 것은 ‘영웅 신화’요, 얻은 것은 ‘국민의 과학 실력’이라는 뼈 있는 말도 있지만 황우석 사태는 우리 사회의 근본을 성찰하게 했다. 관행이란 이유로 묵인되던 논문 베끼기, 표절 등이 도마에 올라 과학계 정화의 계기가 되었다. 난자 수집 과정에 대한 거짓말이 밝혀지면서 생명윤리의 중요성에 눈뜨게 되었고, 줄기세포가 난치병 치료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냉엄한 현실도 깨닫게 되었다.

▷황 교수 사태로 국내에서 줄기세포 연구가 사실상 중단된 가운데 선진국들은 맹추격을 하고 있다. 선두 주자는 사상 최초로 복제양 ‘돌리’를 생산한 영국으로, 줄기세포를 이용해 눈이 먼 쥐의 시력을 회복시켰는가 하면 심근경색을 치료하거나 인공 간을 생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이김으로써 줄기세포 연구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우리도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 황 교수 사태의 대가를 만회하지 못한다면 희망을 접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지 않겠는가.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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