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PB의 역사는 20년도 채 안 돼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이나 스위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고 역사가 100년에 이르는 미국에도 한참 못 미친다. 그만큼 PB의 중요성 자체가 별로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최근 몇 년간 저(低)금리가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외국계 금융기관이 속속 진출하면서 금융전문가의 종합적인 자산관리 서비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부각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두드러진 현상은 주식 투자에 상대적인 강점을 지닌 증권사 PB들이 기존의 은행 PB에 비해 크게 성장했다는 점이다.
○증권사 PB, 주식투자에 장점
PB의 원래 개념은 금융회사가 부유층 고객의 자산을 특별 관리해 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그러나 한국의 PB는 이와는 약간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의 PB는 2003년 이전까지 사실상 은행권에 집중돼 있었다.
또 고객의 자산을 종합적으로 관리해 준다기보다 각 은행들이 부유층 고객의 비위를 잘 맞춘 뒤 거액의 예금을 유치하는 ‘초호화 은행 서비스’ 정도로 인식돼 왔다.
사실 부유층으로서도 워낙 오랫동안 고금리 시대가 계속됐기 때문에 정기예금 이외에 딱히 다른 금융 투자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자산관리 능력보다 서비스가 좋은 은행에 돈을 맡기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금리가 낮아지고 종합적인 자산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PB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았다. 고객에게 잘 보인 뒤 두둑한 은행 예금을 유치하던 전통적인 PB의 역할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반면 고객을 일대일로 만나면서 고객의 자산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새로운 서비스가 정착됐다.
○자산규모 제한 없이 서비스 제공도
특히 지난해부터 증시가 활황을 보이면서 은행권 PB보다 증권사 PB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기존의 은행 PB가 예금과 보험 쪽에 전문성을 갖고 있었다면, 증권사 PB는 주식 투자에 강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권사 PB는 최근 몇 년 새 눈부시게 진화하고 있다.
삼성, 우리투자, 한국투자, 미래에셋 등 주요 증권사들은 2008년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은행권과도 겨룰 만한 종합투자회사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PB 양성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대신증권도 PB추진부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PB사업에 뛰어들 예정이다. PB는 근본적으로 고액 자산가를 위한 서비스다.
하지만 증권사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꼭 수억 원대의 고액 자산가만 PB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실제로 1억 원 이상 혹은 5억 원 이상 식으로 고객의 자산에 제한을 두고 PB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도 있다. 반면 자산 규모의 제한 없이 원하는 고객에게 모두 PB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따라서 자금 사정 및 투자 여건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증권사의 PB 서비스를 찾는 게 중요하다.
주요 증권사 PB 현황 | ||
증권사 | 주요 PB | 특징 |
삼성 | 전 영업점 가능 | 자산컨설팅 그룹과 자산클리닉 센터 등을 통해 전문적인 자산 관리 서비스 체계 구축. |
미래에셋 | 전 영업점 가능 | 고객에 대한 일대일 상담을 통해 유형별로 적절한 자산 배분 모델을 정해.줌. |
우리투자 | GS타워WMC,분당WMC | 부동산 및 세무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다양한 영역의 부가 서비스를 제공. |
한국투자 | 마제스티클럽 압구정PB센터 | 장기투자 분산투자 성과관리의 3대 원칙을 지키는 자산증식형 투자전문 PB임. |
자료 : 각 증권사 |
이런 PB는 피하세요
3K 가운데 첫 번째가 ‘감’이다. 감으로 조언하는 PB들은 뚜렷한 근거도 없이 “저를 믿으세요. 제가 족집게입니다”라거나 “제가 원래 동물적인 감각이 있습니다”라고 부풀려 얘기한다. 그러나 감으로 한두 번은 성공할 수 있어도 계속 성공할 수는 없다.
다음으로 피해야 할 PB가 ‘깡’이 있는 PB다.
“이번에 큰맘 먹고 베팅 한번 하시죠”라고 권하거나 “이 회사채 신용등급이 ‘BBB―’지만 괜찮습니다. 수익률 좋잖아요. 설마 이 회사가 망하겠습니까”라는 식으로 나오는 PB가 여기에 속한다.
좋은 PB는 고객의 돈으로 무리한 베팅을 하지 않는다. 깡이 필요한 투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피하는 게 좋다. 오로지 자기 ‘경험’만 믿는 PB도 문제가 있다.
이런 PB들은 화려했던 자기의 경험만을 앞세운다.
“제가 누구입니까”, “저, 지난해 최고 수익률 올렸습니다”라며 자랑하는 PB에 대해서는 한발 물러나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장에서 과거 경험은 참고 자료일 뿐이다. 한때 잘했던 PB보다 시장과 상황이 바뀌었을 때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PB가 더 좋다.
이 밖에도 PB는 말이 많지 않아야 한다.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고객의 말을 많이 듣는 PB가 더 유능한 PB일 수 있다. 말이 많은 PB는 자꾸 뭔가 상품을 팔려고 하는 쪽이다. 반면 많이 듣는 PB는 고객이 뭘 필요로 하는지를 경청하는 쪽이다. 고객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그에 맞는 상담이 가능하다.
이 말은 ‘상품만을 팔려는 PB’도 좋은 PB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고객의 자산을 성의 있게 관리할 고민은 하지 않고, 어떻게든 주변 상황과 연결해 뭐 하나라도 더 팔려고 하는 PB를 만나면 빨리 결별하는 것이 좋다.
또 주식, 예금, 부동산 등 다양한 금융 자산 가운데 지나치게 한곳에 편중하는 PB도 피하는 것이 좋다. 다양한 사회 경험을 통해 여러 곳에 적절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PB에게 자산을 맡기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조언이다.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PB를 믿어야 하는 이유
영국이나 스위스, 미국 등 금융 선진국의 고객들은 전적으로 PB를 신뢰하는 반면 한국의 고객들은 어지간해서는 PB를 믿지 않는다.
한국 부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본인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돈에 관해서만은 가족도 잘 믿지 않는다.
유산을 물려받은 ‘전통적 부자’들은 남에게 조언을 받아 부를 늘려나간 경험이 거의 없다.
또 외환위기 이후 자신의 힘으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자’들도 스스로 정보를 찾아 성공을 이뤄 낸 사람들이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
문제는 이런 자신감 때문에 PB와 상담을 하게 돼도 자신의 자산 상태를 솔직히 공개하지 않는 고객이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산을 3, 4개 부분으로 쪼개 각각을 다른 PB에게 나눠 맡기는 고객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PB를 믿지 않는다면 아무리 유능한 PB를 만나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PB는 단순히 금융 상품만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의 생활 전체를 돌봐 주는 매니저다. 오죽하면 유럽에서는 PB를 ‘금융 주치의’라고 부르겠는가.
환자가 병의 증상을 정확히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그 병을 제대로 고칠 수 없다. 증상과 가족의 병력을 비밀로 하는 환자에게 근본적인 치료는 불가능하다.
한국 PB의 역사가 일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고객의 모든 것을 상담하고 감당할 만한 훌륭한 PB가 크게 늘고 있다.
평생의 ‘자산 주치의’를 고른다는 생각으로 찾는다면 능력 있고 믿을 만한 PB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고 본다.
좋은 PB를 고른 뒤 전적으로 믿고 상담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올바른 자산 증식의 지름길이다.
정복기 삼성증권 PB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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