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선한승]제3의 노동운동, 훈풍이 분다

  • 입력 2006년 11월 18일 02시 59분


한국 노동운동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제3의 노동운동이다. 최근의 사례에서 이런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뉴라이트 계열의 노조가 깃발을 올리고 최대 산별 공공부문 노조에 다양한 노동단체가 발족된 일이 대표적이다. 단위노조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흐름이 감지됐다. 예를 들어 서울지하철노조는 파업에 동참하라는 상급단체에 반기를 들었다. 10년 무분규라는, 어찌 보면 노동운동을 방기하면서까지 내 갈 길을 가겠노라고 줄기차게 고집하는 현대중공업노조 또한 새로운 노동운동의 흐름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노동운동의 새로운 변화는 찻잔 속의 태풍인가, 아니면 새로운 변혁의 깃발인가?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까지 한국의 노사관계가 세계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해 역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대한 반작용에서 새로운 추세적 변화가 비롯된 면이 크다는 점이다. 아래로부터 일어나는 변화요, 기층의 반란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세계 노동운동의 흐름은 세 가지 이념으로 이어져 왔다. 첫째로 초기 산업혁명 당시 체제변혁을 주장하는 전투적 노조운동을 지향하는 정치적 조합주의다. 다음으로 조합원의 실리투쟁을 최대의 목표로 삼는 경제적 조합주의가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합의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노선이다. 서구에서 국민경제를 위해 대화와 타협으로 노동운동을 하는 가장 발전된 노동운동의 그룹이다.

선진국 노조는 경제적 조합주의를 넘어 사회적 합의주의의 이념을 표방한 지 오래다. 글로벌 세계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한국 노동운동은 아직 정치적 조합주의와 경제적 조합주의가 중첩되어 나타난다. 기업별 노조운동을 하면서 정치적 색채를 강하게 띤다. 단위사업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 이라크 파병 반대 등 정치적 구호를 노사분규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양대 노총 모두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살벌한 투쟁을 감행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150년 전에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하라고 했으나 한국의 양대 노총 사이는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국제대회에 나가서도 싸움의 상대는 노조가 가장 적대시하는 국제투기자본이 아니라 국내의 노동자 형제를 겨냥하기 일쑤다.

한국 노동운동에서 특이한 점은 운동 이념은 똑같으면서도 투쟁 방식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한쪽은 비타협적 태도를 견지하는 전투적 노조운동을 절대로 버리지 못하고 다른 한쪽은 어용 시비를 당하기 일쑤다.

선진국 노조의 경우, 노동운동 이념은 서로 다르나 투쟁 방식과 전략은 차이가 없다. 프랑스 노조의 예를 굳이 들지 않아도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노조가 있는가 하면, 기독교 이념을 추구하는 노조가 있는 유럽 국가가 많다. 그럼에도 유럽 여러 나라 노조의 투쟁 방식은 법과 원칙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는다.

필자가 유럽과 미국에 있을 때 외국의 노동운동가가 던지는 질문은 한결같았다. 한국의 자본주의와 근대적 노동운동의 역사는 불과 반세기에 불과한데 어떻게 단기간 내에 비약적인 성장을 했는지 경이로움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이 또한 한국은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역방향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민주화 투쟁과 함께 급성장한 노동운동을 정치권과 부도덕한 일부 기업이 내성을 키웠다. 이제는 정치권과 기업이 투명해지고 있으나 한국 노동운동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비리 정치인과 부도덕한 기업인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법의 심판에 따라 엄벌에 처해진다는 사실이 각인되고 있지만 말이다.

세계의 이단아,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 이제 사회로부터, 그리고 노조 내부에서 경종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제3의 노동운동을 추동하는 동력이라고 보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비타협 노조운동과 원칙 없는 노조운동에 반기를 올린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도 총파업이라는 카드를 자주 들고 나서는 전투적 노동운동에 식상해하는 그룹이 자생적으로 생겼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어 가기 위해서는, 그리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청년층 실업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사관계가 이대로 돼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염원이 제3의 노동운동의 자양분이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지만 노사관계 경쟁력은 세계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가 일본의 100배나 되는 현실을 놓아두고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제3의 노동운동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경제 사회 모든 부문이 그렇듯이 노동운동도 경쟁의 시대로 들어섰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실리추구에 입각한 노동운동이 조합원의 신뢰를 받고 성장한다는 원칙이 정립됐다. 조합원의 표를 먹고 사는 민주적 조직이기에 갈수록 추락하는 노조 조직률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3의 노동운동이 구태의연한 노동운동에 잡혀 있는 한국의 일부 노조지도자에게 위기감을 심어 주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되는 노동운동으로 나아가기를 충심으로 기대한다.

선한승 한국노동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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