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부산 금정구 부곡동 금정소방서 뒤뜰. 정년을 한 달여 앞두고 가스폭발 사고 현장에서 순직한 금정소방서 서동소방파출소 부소장 서병길(57) 소방장의 영결식이 열렸다.
생과 사의 현장에서 동고동락한 후배 김동명(45) 소방장의 추도사가 이어지는 동안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애써 눈물을 삼키던 제복의 소방관들 사이에서 끝내 ‘꺽꺽’ 비명 같은 통곡이 터져 나왔다.
영결식장을 지킨 것은 1500여 명의 시민과 소방관들이었다. 후배 소방관들은 “왜 내가 아니고 정년퇴직을 앞둔 선배가…”라는 죄책감에 가슴을 쳤고, 시민들은 “당신이 사지로 내몰리도록 우리는 뭘 했는가”라는 반성에 깊이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 정치인이나 책임 있는 정부 고위 인사는 보이지 않았다. 문원경 소방방재청장은 16일 오후 빈소에 들렀다가 곧장 상경했다. 청장이 했어야 할 옥조근정훈장 추서는 황정연 차장이 대신 했다. 해외 순방 중인 허남식 부산시장을 대신해 행정부시장이 서 소방장에게 ‘소방위’를 추서했다.
직접 조문한 사람도 정치인으로는 부산이 지역구인 한나라당 박승환 의원이 유일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명숙 국무총리, 여야 4당 대표 등은 화환으로 조문을 대신했다.
“올해 현장에서 숨진 소방관이 서 소방장까지 다섯 명째입니다. 영결식에 청장이 직접 참석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청장이 조문 온 것만도 대단하게 생각해야지요.”
동료 소방관들의 자조 섞인 설명이었다.
“생명을 구할 1%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희망을 버릴 순 없지. 제 목숨 버려 시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소방관이야”라던 고인의 영결식은 그렇게 끝났다.
그가 구출해 낸 1052명과 그 가족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상황은 다르지만 9·11테러 추모식에서 희생자는 물론이고 구조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소방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결코 당신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미국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진정한 영웅에 대한 사회적 대접이 왜 이리 차이 나야 하는 것일까라는 우울한 의문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조용휘 사회부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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