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네오뎀과 파더콘이 만나면

  • 입력 2006년 11월 19일 20시 08분


왜 서울의 종로5가에는 약국이 몰려 있고, 웨딩드레스 가게는 이화여대 앞 아현동에 모여 있을까? 게임이론으로 설명된다. 100m 거리에서 A, B 두 사람이 약국을 개업한다고 치자. 거리의 사람들이 동일하게 분포하고 판매되는 약의 종류가 같다고 할 때 약국이 들어설 최적의 장소는 약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걸어야 할 거리가 최소인 지점이다. A, B는 경쟁관계이기 때문에 A가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B는 왼쪽으로 이동한다. 결국 두 약국은 중앙에서 마주 보고 영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호텔링 모델’이라는 이 이론은 경제에서보다는 정치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강정책이 왜 큰 차이가 없는지 이보다 잘 설명해 주는 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중간을 공략해야 둘 다 산다는 간단한 이치다. 물론 양측에도 차이는 있다. 하지만 그 차이란 차별철폐정책, 낙태와 동성애 권리, 총기 규제 등 다분히 윤리적인 이슈일 뿐이다. 우리처럼 나라의 근간과 정체성을 흔드는 것은 없다. 더욱이 한 당이 이슈를 제기하면 다른 당이 바로 그 이슈를 정책으로 흡수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이젠 “골라낼 선거 이슈가 없다”는 말도 나온다. 흑인노예를 해방한 링컨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이었지만 줄곧 흑인소수자 보호정책을 써 온 쪽은 민주당이었던 것이다.

이런 전통이 흔들린 것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선출된 두 번의 선거에서다. 앨 고어 상원의원과 맞붙었던 첫 번째 대선도 그랬지만 9·11테러 이후 두 번째 선거에서는 여론 분열과 적대감이 너무 심해서 한국의 정치상황이 옮겨간 게 아니냐는 농담이 나왔을 정도였다. 부시 행정부에서는 강경 보수주의자인 네오콘(neo-con)이 득세했다. 정치와 외교상황을 기독교적 선악관에 바탕을 둔 이분법 논리로 설명하는 이들의 등장은 북핵 위기와 맞물려 한반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번 중간선거를 계기로 공화당에서는 네오콘이 퇴조하고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시절의 합리적 외교노선을 대표했던 파더콘(father-con)이 재등장하고, 민주당에서는 보수 성향의 네오뎀(neo-Dem)이 전면에 나섰다고 한다. 국제문제에 대한 소극적 개입과 현실주의적 외교노선을 주장하는 파더콘, 그리고 이라크전쟁을 빼놓고는 공화당과 의견을 같이하는 민주당 내 보수주의자들인 네오뎀은 결국 중간에서 수렴할 테니 말하자면 중도파의 화려한 부활인 셈이다.

‘선거의 귀재’로 알려진 부시 대통령의 정치고문 칼 로브의 전략이 먹혀들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로브는 노무현 대통령처럼 지지층은 확실히 결집하고 반대파는 버리는 ‘양극화 전략’을 쓰는 인물이다.

중간선거 이후 미 의회에서 한국과 북한을 향해 나오는 메시지도 예전과 차이가 없다. 최근 열린 의회 대북청문회에서 북한을 집중 성토한 것은 모두 민주당 의원들이다. 차기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될 톰 랜토스 의원은 “북한은 전 세계의 스캔들”이라며 강력한 대북제재를 한국 정부에 주문했다.

시선을 우리 내부로 돌리면 한숨이 나온다. 여야의 정책이 닮기는커녕 ‘반대말 공식’처럼 극과 극을 달린다. 정부 정책부터가 사사건건 위헌 시비를 낳는 지경이니 일견 당연해 보인다.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흔들림 없는 함선에서 그나마 차이를 찾는 미국의 안정된 정치가 부러울 뿐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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