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2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아트파크 갤러리에서 ‘검은 숲’전을 열고 있다. 미술관이 아닌 화랑에서는 처음 하는 전시인데 수년간 그가 추구해 온 ‘동양화의 경계 확장’을 힘있게 보여 준다.
전시작 중 가장 큰 ‘블랙 포리스트 7’(226×546cm)은 ‘죽림칠현(竹林七賢·중국 위 진 교체기에 권력에 등을 돌리고 죽림에서 거문고와 청담을 즐긴 7명의 선비)’의 이미지다. 사군자 중 하나인 대나무 숲에서 7명의 동구리가 노닐고 있다. 공간 곳곳에는 기호화된 매화 꽃이 떠다닌다.
또 다른 작품 ‘인 더 파운틴(Fountain)’은 제목대로 크고 작은 형형색색의 분수 사이에서 동구리가 웃고 있다. 분수는 사군자의 하나인 난을 기호화한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동구리는 동그란 웃는 얼굴에 몇 가닥 안 되는 머리카락을 지닌 캐릭터다. 동구리를 찾아내기까지 그는 2년 여간 활동을 접고 쉼 없이 드로잉 작업에 매진했다.
“사람 이야기를 단순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벽에 부닥쳤어요. 고민 끝에 드로잉만 했습니다. 원초적 형상에 다가서기 위해 머리가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도록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그렸습니다. 드디어 단순해지더군요. 마치 옛 선비들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난을 치는 듯한 그런 기분, 말입니다.”
동구리는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권 씨는 최근 2, 3년 동안 중국 상하이 모카 현대미술관, 일본 모리미술관, 대만 현대미술관, 뉴욕 엘로버드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올해 말에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리는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에 초청받아 평면과 애니메이션을 출품했다. 주최 측은 제작비를 부담했는데 그가 26일 결혼해 현지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하자 호텔 예약 등 편의를 봐 주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선 동양화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한낱 삽화 정도로 통하던 내 작품들이 해외에서 더 흥미를 끌고 있다”며 “현지 큐레이터들이 직접 알고 초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제도권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것이 동양화를 다르게 보는 동력이 됐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화단 조직을 벗어나니 자유로움이 밀려 왔어요. 학교 밖에서 실크 등 소재를 다루는 테크닉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는 동양화의 울타리에 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애니메이션 등을 독학했다. 요즘도 서울산업대 등에서 동양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멀티미디어 기법을 강의한다. 그는 “아직 경계의 끝을 보지 못했으니, 가는 데까지 가 보겠다”며 “그러다 보면 먹과 한지도 다시 들어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전시 문의 02-733-8500
허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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