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난 고인은 연희대(연세대의 전신) 정치외교학과, 미국 리오그란데대(학사), 미국 켄트주립대(석사), 영국 옥스퍼드대(박사)를 졸업한 뒤 대통령비서실장, 외무부 장관, 7·8·10·15대 국회의원, 한일의원연맹 초대 의장 등을 지냈다.
고인은 이름 앞에 늘 ‘초대’, ‘최연소’, ‘최초’ 등의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탁월한 역량을 보였다.
1948년 연희대 졸업을 앞두고 유학길에 오르면서 대한민국 제1호 해외유학생이 됐으며 귀국 후 알게 된 박정희 소장에게 조언하게 된 것을 계기로 1962년 36세로 최연소 대통령비서실장을 맡았다.
1963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군정 연장 선언으로 한미 관계가 크게 악화됐을 때 비서실장으로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박 의장의 중재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외교계에 큰 족적을 남긴 고인은 이어 주태국 대사를 거쳐 1964년 38세로 최연소 외무부 장관에 임명됐으며 장관 재임시절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한일협정(1965년) 체결을 추진하고 서명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고인은 국회 최초로 전국구 4선 의원을 지냈다. 이어 주스위스 대사, 주로마교황청 대사 등을 지낸 뒤 15대 국회의원을 마지막으로 2000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한영외국어고와 동원대를 설립해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경숙 씨와 딸 이정은(47) 동원대학장, 아들 이정훈(45) 연세대 국제교육교류원장 등 1남 1녀가 있다.
장례는 외교통상부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2일 오전 9시. 02-3410-6912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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