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제 잘못이고요. 우리 사회 양극화의 주범인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의도는 순수했으나 방법이 미숙했습니다. 강남을 비판하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행동을 한 일부 참모의 부적절한 행태 또한 제 불찰입니다. 추운 겨울은 다가오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는데, 맘 편히 쉴 내 집 한 칸이 없는 국민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오고….”
우리가 이런 진심 어린 대통령의 사과를 들을 날이 있을까.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이런 사과가 가장 절실한 쪽은 국민이 아니다. 바로 노 대통령 자신이다. 왜 그럴까?
이백만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사임의 변’에서 “부동산 상황의 핵심은 정책 부실이 아니라 정책 불신”이라고 주장했다. 정책 불신의 책임을 ‘언론 탓’으로 돌린 게 역시 이 전 수석답지만, 그의 말은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 작금의 정책 불신은 외환위기를 맞은 김영삼 정부 말기 못지않게 심각하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과 반대로 갔더니 8년 만에 30억 원대 부동산 부자가 됐다는 어느 명예 퇴직자의 얘기(본보 11월 20일자 A13면)를 보라.
현 정부 정책의 대표선수 격인 부동산정책이 참담한 실패로 돌아간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정책의 진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란 게 개인적인 판단이다. 겉으로는 ‘투기 세력을 겨냥한 스마트탄’이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강남 흔들기를 통한 주류세력 교체’를 노렸다. 겉과 속의 표적이 다르니 당연히 명중이 어렵다. 특히 지휘관의 입맛에 맞는, 스마트하지 못한 사수들만 데려다 쓰니 스마트탄이 되기는 처음부터 글렀다.
더구나 강남을 쥐 잡듯이 족쳐 대면서도 자신들은 슬그머니 강남 쪽으로 발을 들이민 정책 담당자들의 겉과 속이 다른 행태를 보면서 국민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순진하게 정책을 믿다간 나만 당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퇴임 후 임대주택에서 살겠다’던 노 대통령이 고향에 대지 1000평가량의 집을, 그것도 후원자의 측근이 소유한 땅을 사들여 짓는다는 보도를 접하고도 허탈해 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 ‘1년만 버티자’는 심리까지 겹쳐 정책 불신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편 가르기’ 정책도 안 통한다. 이른바 ‘스마트탄’이 같은 편에 오폭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길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 최고 책임자들이 처절하게 반성하고 참회하는 것이다. 정책의 출발은 정책 수요자와의 소통에 있다. 국민이 ‘이제야 정신 차렸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여야만 정책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노 대통령에겐 아직 1년 이상이 남아 있다. 다걸기(올인)했던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게 두려워 실정 책임자인 김병준 씨를 다시 중용하는 ‘자포자기식 인사’를 계속하다간 외환위기 이후의 당시 김영삼 대통령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적시에 잘못을 인정했느냐, 못했느냐는 이란-콘트라 스캔들과 워터게이트 사건 같은 큰 잘못을 저지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운명을 갈랐다. 서양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진정한 사과는 강한 자만이 할 수 있다.’
박제균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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