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중현]비정규직 해법 ‘가슴’만으론 안된다

  • 입력 2006년 11월 21일 19시 58분


“일과가 끝난 뒤 샤워를 할 때 정규직이 쓰는 샤워실은 못 들어갑니다. 정규직에게 배정된 통근버스에 우리 같은 비정규직은 절대 안 태워 줘요.”

올여름 지방의 한 대기업 공장에서 만난 40대 비정규직 근로자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연봉 역시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푸념했다. 이 회사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눈에 띈다.

정부가 이른바 ‘양극화 해소’의 핵심 과제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현실적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국회에는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 계류돼 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통계청의 2001∼2006년 경제활동인구를 분석한 결과 비정규직 수와 일자리 수의 상관계수는 0.82로 높게 나타났다. 쉽게 말해 비정규직이 줄면서 일자리도 감소하고 있다는 뜻이다. 본보가 30대 기업 인사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도 기업 10곳 중 4곳꼴로 “비정규직 보호 강화 등의 이유로 정규직 채용은 그대로 유지하고 비정규직만 줄였다”고 답했다. ▶본보 20일자 A1·10면 참조

이러한 분석들의 메시지는 뭘까. 비정규직 보호가 정규직 전환으로 이어지는 대신 ‘고용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기업의 채용 규모를 줄여 전체 일자리 증가를 억제한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크게 들린다. 하지만 이 때문에 손해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의 고통은 잘 돌아보지 않는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라는 구호의 뒤편에는 “시간제 일자리라도 좋다. 일만 하게 해 달라”는 고등학교 졸업생, 100번 넘게 면접을 보고도 직장을 찾지 못하는 대졸 취업준비생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정규직으로 도약할 ‘비정규직 발판’을 얻을 기회조차 놓치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차별이 분명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경제학의 명제는 비정규직 문제 해법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일자리의 질(質)을 개선하기 위해 양(量)을 포기할 것인지, 포기한다면 얼마까지 포기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따뜻한 가슴’ 못지않게 현실에 대한 ‘차가운 머리’도 중요하다.

박중현 경제부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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