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넘은 친구들끼리 어쩌다 노래방에 모이면 파장 대목에 누군가 한 사람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부르고 느린 곡조에 따라 분위기도 숙연해지는 것.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삶의 문(門) 하나가 영원히 닫히는 듯 노래하는 서른을 이미 10년 전에 건너와 버린 사람들이, 번번이 그 노래에 애잔해지는 것은 감성만은 노래를 처음 불렀을 때인 20대에 붙들려 있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에 쓴웃음을 짓게 된다.
본보가 6회에 걸쳐 기획 연재한 ‘대한민국 50대, 2006년의 초상’이 게재되는 동안 든 생각은 어느 세대엔들 ‘서른 즈음에’가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50대의 자기 세대에 대한 자각을 알아보기 위해 862명에게 인터넷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장 뜻밖이었던 것은 어떤 객관적 수치가 아니었다. 응답자 중 무려 623명이 ‘50대로 사는 것의 애환이 무엇인가’라는 주관식 질문에 답을 했다는 사실이다.
‘나이 먹은 것이 죄도 아닌데 40대 후반부터 퇴물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가 야속하다’ ‘50대는 앞뒤 세대 모두에 질타의 대상’ ‘아마 지금의 50대는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세대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인생 이야기를 해 주면 옛날과 달라졌다고 하고 집사람도 그러다 애들한테 왕따당한다고 한다’ ‘시부모를 의무적으로 봉양했지만 자식과 며느리에게서는 그걸 기대할 수 없음’ ‘남편의 독재, 가부장적 사상’….
곧잘 맞춤법이 틀리기도 하는 그 거친 문장들은 50대의 가슴속에 들끓는 소리였다.
그 답들을 읽기 전까지는 50대를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세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IMF 세대란 그 때문에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 축이라고만 여겼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살아 있는 권위인 50대가 젊은 후배나 자식들에게 외면당한다는 사실에 그토록 주눅이 들어 있으리라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50대는 유신정권의 적자(嫡子)이자 개발시대의 주역일 뿐이었다. 그들이 장발을 자르지 않았다고 가위질을 당할망정 숨어서라도 긴 머리를 ‘자유의 깃발’처럼 풀어헤치고 다녔던 사람들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영어판 야후에 들어가 검색어로 ‘50대(fifties)’를 입력하면 50대를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의 목록이 떠오른다. 50대가 좋아하는 팝, 50대가 즐겨 보던 옛날 TV시리즈, 50대의 역사…. 만 50세가 되는 사람들이 태어난 해 1956년의 ‘역사’를 선택하면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재선됐고, 엘비스 프레슬리가 TV에 데뷔했으며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버스의 흑백분리 좌석제에 저항하는 운동을 벌였던 해이자 JIF땅콩버터가 탄생한 해라는 기록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그 기록의 문화에 비하면 한국의 50대 513만여 명은 아줌마 아저씨라는 호칭 말고는 ‘이름을 잃어버린 세대’와 같다.
50대가 맞닥뜨린 삶의 불안정보다 그들에게 더 힘든 것은 ‘아무도 내가 살아온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일지 모른다. 내 마음속에도 여전히 내 시대의 노래가 흐르는 걸 들어 달라는….
50대, 그들의 세월을 딛고 오늘의 우리가 있다.
정은령 사회부 차장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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