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지성과 덕성은 기본
그 사이 고시제도의 폐해도 여러 차례 지적됐다. 특히 시험성적에만 매달린 고시생에 대해 국가지도자로서의 자질에 의문이 제기됐다. 행정고시에서는 이미 1차와 2차에 걸친 필답고사에 이어 3차 시험을 통해 고위 공직자로서의 적성을 가려내는 작업이 진행돼 왔다. 사법시험 3차 구술고사는 통과의례로 여겨졌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3차 시험이 민주화운동에 관여한 학생을 탈락시키는 도구로 악용된 아픈 전력도 크게 작용한 바 있다.
이제 민주정부가 자리 잡은 시점에서 과거의 상처를 씻고 법조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점검하고자 구술고사를 강화하고 있다. 법조인과 법학 교수가 한 팀이 되어 구술고사를 거친 후에 일부 수험생을 심층면접에 회부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최근 발표된 제48회 사법시험 2차 합격자 1002명 중 26명이 심층면접에 회부돼 이 중 7명이 불합격 처리됐다. 3차 시험은 더욱 강화될 예정이다. 다만 1차와 2차를 합쳐 20여 시간에 걸친 법학시험을 통과한 응시생을 짧은 구술고사를 통해서 부적격 처리할 때에는 좀 더 신중한 판단과 정책적 고려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법시험 합격자는 2년간 사법연수원에서 국가공무원 신분으로서 국비 연수를 받을 뿐만 아니라 법조직(法曹職)은 고도의 균형감각과 윤리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일정한 수준의 국가관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응시자 중에는 국가관이 의심스러운 경우가 있었지만 심층면접에서 자세를 고쳐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냉전시대의 유물로서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특성상 다양한 견해가 자리 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적에 대한 관용에 한계가 있다. 국수주의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도 배격해야 한다.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기본적 자질을 의심받는 편향적 시각도 교정돼야 한다. 예비 법조인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 갖춰야 할 보편적 지성과 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학생 중에는 대학입시를 위한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대학생활도 고시준비에만 휘둘려 대학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덕체(智德體)의 함양이 부족한 경우가 흔히 나타난다. 예로부터 공인에게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요구하지 않았는가. 인재를 선발하는 기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점수’보다 폭넓은 사고 중요
법학처럼 사람의 사회생활 전반을 관류하는 학문은 폭넓은 독서와 숙고가 요구된다. 요즘 학생들은 교수의 학문적 결정체가 녹아 있는 법학 전문서적보다는 표절 의심이 있는 모자이크식 잔꾀로 가득 찬 수험서에 빠져들고 있다. 점수 위주, 암기 위주,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사고의 틀은 결국 근본을 소홀히 하게 마련이다.
대학에서 전인적 법학 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도록 할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시험보다는 교육이 중심이 돼야 한다. 법적 사고와 그 적용은 법(法·물 水+갈 去)이라는 글자 그대로 흐르는 물과 같이 순리에 따를 줄 알아야 한다. 형평의 저울추는 정확하게 작동돼야 한다. 사법시험도 이제 자연의 이치를 깊이 통찰할 줄 아는 선(善)한 인재의 선발장이어야 한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한국공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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