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효성]국민의 사기는 성장을 먹고 큰다

  • 입력 2006년 12월 4일 03시 00분


동아일보에 실린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인터뷰 기사(2일자 1·3면)를 보고 마음이 천근만근 같았다. “국민이 지금처럼 무엇인가를 이루겠다는 의욕을 잃은 적은 없다, 중국 일본 등 주변 국가의 경제는 날로 좋아지고 있는데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은 나라가 드러누워 있다, 국가를 책임질 사람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박태준 명예회장의 걱정

한국경제에 대한 박 명예회장의 걱정은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생각하면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는 말로 요약된다. 허허벌판에서 맨주먹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제철공장을 세운 원로가 보내는 애정 어린 고언에 많은 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 경제의 오늘이 좋지 않거니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 같다는 염려는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경제의 조로화, 저성장, 고실업 현상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지도층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국민과 기업이 활력을 잃은 모습이 아닐까. 국가 전체적으로 분열과 무기력함이 지배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원로의 주장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더 늦기 전에 정부가 기업을 살리려 하고, 기업이 도전정신을 발휘하고, 국민이 신발 끈을 매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난망하다. 기업의 투자를 늘리고, 성장우선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지 않으면 양극화의 해소, 서민생활의 안정을 기약할 수 없을지 모른다.

며칠 전 보도에 의하면 국내 상장 기업의 현금성 자산이 64조 원에 이른다. 삼성전자 한 회사만 7조 원으로 아프리카 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다. 옛날에는 은행 문이 닳도록 기업이 찾아가서 돈을 빌려 투자를 했는데 지금은 왜 돈을 쌓아 놓고도 투자를 하지 않을까.

첫째, 기업에 대한 규제 때문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명백히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다. 외국기업에 허용되는 투자를 재벌이라고 해서 국내 기업이 제한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정책 당국자들은 많은 예외를 두어 기업의 투자를 막는 일은 없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그렇다면 푸는 걸 원칙으로 하고 필요한 경우 개별법으로 제한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정책은 규제를 위한 규제라고밖에 볼 수 없다.

지난달 21일 한중 우호주간 행사차 중국에 갔을 때 주중 대사관 고위 관계자에게서 한국기업의 대중국 투자가 4만 건에 이르며 한국기업이 고용한 중국 근로자의 수가 200만 명을 넘는다는 말을 들었다.

중국투자의 대부분이 저부가가치 산업으로 국내에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올해 세계은행 조사에 따르면 기업 하기 좋은 환경과 관련해 한국이 155개국 중 27위, 중국이 7위이다. 이런 차이로 수천억 원의 매출에 종업원 200∼300명의 장치산업이나 고부가가치 산업이 중국으로 옮겨 갔다면 한국 정부가 뼈아프게 생각해야 한다.

중국보다 기업하기 힘들다니…

투자 부진의 두 번째 요인은 정부와 ‘시민단체’라는 이름의 막강한 권력의 반기업정서와 부자 때리기이다. 지금은 투자와 소비를 늘려 경제가 성장하고 고용이 늘어나야 한다. 기업도 잘못하는 점과 고쳐야 할 행태가 있지만 성장을 받쳐 주고, 고용을 늘리고 나라 살림에 필요한 세금의 상당액을 낸다.

다 같이 못살고 배고팠던 시절의 새마을정신, 증산, 수출, 건설 등의 구호를 이제 와서 다시 강조하고 싶지 않다. 한국은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에서 50위에 가까운 나라이고, 더 잘살려면 성장이 우선이라는 공감대를 갖고 정부, 기업, 국민이 혼연일체가 돼야 한다.

김효성 전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한국산업기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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