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느끼는 법과 주먹의 거리는 사법시험 정답과는 다른 것 같다. 동시다발로 나타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연가투쟁 집회, 민주노총 파업 결의대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는 법이 아닌 주먹의 표현이다.
전·의경 수기집에 억울함 가득
경찰서 나무에 불이 나고, 도청 담이 무너졌다. 격렬한 몸싸움과 청사 진입, 국회 난입 시도가 있었다. 폭력배의 난동은 분명 아니다. 억울한 사람의 하소연이고 정당한 자기주장의 노력이다. 하지만 누군가 주장하고 결의하고 규탄하는 중에 또 다른 누구는 와장창 깨지고 찢어지고 부러진다. 바로 전경이다.
집단행동이 있으면 항상 철망으로 창문을 가린 ‘닭장 버스’가 나타났다. 그 속에는 로마 병정 복장으로 ‘양계장 닭처럼’ 끌려 나온 전경이 있다. 이들은 집회 때마다 죽창과 쇠파이프, 돌팔매질의 타깃이 된다. 머리가 깨지고 손발이 부러지는 것이 임무다. 맞고 터지는 것이 본래 임무는 아니다. 단지 집회시위가 계속되면서 누구나 알게 된 임무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전경이 국민의 화풀이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적이 분명한 전쟁이라면 죽거나 다치는 일이 그렇게 억울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무엇을 지키고 수호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하지만 평상시 길거리에서 깡통 로봇처럼 짓밟힌다면? 이들의 심정은 경찰청이 최근 펴낸 ‘전·의경 그들의 삶’이란 수기집에 솔직하게 담겨 있다.
사실 전경은 거리의 노숙인보다 못하다. 노숙인도 거리에서 먹고 자지만 공개적으로 맞지는 않는다. 인간 방패로 동원되지도 않는다. 어느 시민단체는 전경에게 명찰을 달자고 했다. 왜 그랬을까? 분실을 염려했을 것이다.(농담이다!)
전경을 공격하는 적은 이들의 삼촌이자 아저씨, 아니 형님들이다.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거나 또 정당하다고 믿는 이기적인 인간 본성에 충실한, 평범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자기주장을 위해 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약자를 쉽게 희생물로 만든다. 이기적인 패거리는 이런 불쌍한 약자를 점령군처럼 깔아뭉개면서 자신들이 대의를 위해 싸운다고 착각한다. 더 큰 권력의 희생자라고 믿기에 눈앞에서 쓰러지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과 막는 사람 모두가 집단 폭력과 인간 이기심의 희생자다. 자신의 억울함과 권리를 찾겠다는 사람이 노예처럼 끌려 나온 전경을 쇠파이프와 죽창으로 치고 깨고 밀 때 그들의 심리는 어떨까? 대통령부터 노동자까지 모두 악다구니와 막가파 정신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오기와 아집 그리고 악만 남은 대한민국에서 전·의경은 비참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엉뚱한 적을 만드는 사회
국가 권력의 횡포를 까발리겠다는 시대에 또 다른 형태의 국가 폭력이 전경에게 쏟아지는 상황이다. 평화적 시위문화의 정착, 관용과 이해심이 있는 사회를 부르짖는다. 이것도 점잖은 안타까움의 표현일 뿐이다. 현실을, 문제를 우아하게 회피하게 만든다. 인간이란 즉각적이고 격한 감정을 노출하는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분명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폭력집회 없이도 억울한 심정이 공유되고 서로의 주장을 수용하는 사회가 이상적이다. 지금은 그런 사회가 너무나 멀기에 ‘무데뽀’ 사회에 걸맞은 방식을 찾게 된다. 이런 영화 대사가 있었다. “나는 딱 한 놈만 잡아 확실히 손을 본다.” 전경에 맞서고 또 전경을 때리는 그가 바로 닭장차에 들어가는 그런 사회라도 되면 좋겠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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