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교과서포럼의 혹독한 시련

  • 입력 2006년 12월 5일 20시 02분


좌(左)편향 역사교과서를 바로잡기 위해 출범한 교과서포럼이 궁지에 몰려 있다. 이들이 심포지엄에 내놓은 자료에서 4·19혁명을 학생운동으로 격하시켰다는 이유로 관련 교수들이 폭행을 당했다. 심포지엄은 무산됐고 싸늘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좌파 진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소를 보낸다.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펴낸 후소샤 교과서의 한국판이라고 몰아붙였다. 어느 좌파 인터넷신문은 4·19단체 회원에게 폭행당한 안병직(70) 서울대 명예교수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안 교수는 멱살을 잡히고 머리카락을 쥐어뜯기는 등 봉변을 당한 후 겨우 달아났다.’

파문의 핵심은 폭력이다

교과서포럼의 어설픈 대처가 화근이었다. ‘살아있는 역사’인 현대사 교과서를 만드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이들이 ‘한국 근현대사 대안교과서, 이렇게 고쳐 만듭니다’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열던 지난달 30일, 방청석은 취재진으로 가득했다. 교과서포럼이 좌편향 교과서의 대안을 제시하겠다며 만든 자료집엔 ‘4·19학생운동’ ‘5·16혁명’이라고 뚜렷이 나와 있었다.

과거 좌파 학자들이 역사교과서를 만들 때 수많은 기자 앞에 ‘6·25통일전쟁’ ‘5·16군사정변’이라고 적힌 책을 내놓고 공개행사를 가졌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교과서포럼은 내부 토론과정을 먼저 거치거나, 공개 행사를 열려면 정제된 내용을 갖고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오해도 있었다. 이날 자료는 대안교과서의 최종본이 아니라 토론을 위한 시안이었다. 그것도 근현대사의 시기별로 필자를 정해 며칠 전에 원고를 취합해 놓은 상태였다. 자료집에는 제목만 ‘4·19학생운동’으로 나와 있을 뿐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설명도 따로 없었다. 5·16에 대해 담당 필자는 ‘미시적으로는 군사쿠데타이며 거시적으론 당시 국가적 과제였던 산업화를 주도할 새로운 통치집단 등장의 계기가 됐던 사건’이라고 분명히 썼다.

개인적 견해를 대안교과서로 간주해 대응한 것은 성급하고 지나쳤다. 이날 행사엔 시각이 다른 토론자들이 나와 있었다. 정상적으로 진행됐더라면 강한 반론이 뒤따랐을 것이다.

이날 사태의 핵심은 폭력이었다. 4·19단체의 일부 회원들은 단상 위로 올라가 학자들을 밀치고 테이블을 넘어뜨렸다. 항의하는 교수들을 폭행하고 난장판을 만들었다. 이들은 휴대용 확성기로 계속 구호를 외쳤다.

대학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곳곳에 만연된 폭력만능 풍조가 지식사회와 역사평가에까지 확산된 것이다. 한 서울대 교수는 “교과서포럼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지만 이번 사태는 학문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용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같은 뉴라이트 진영의 태도가 더 볼썽사나웠다. 몇몇 뉴라이트 단체로부터 ‘교과서포럼이 좌편향을 바로잡으려다 역편향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성명이 나온 것은 바로 당일이었다. 이날 행사는 오후 2시에 시작됐고 돌발 사태는 30분 뒤 벌어졌다.

4·19단체 회원들이 심포지엄 당일과 그 전날 보도된 신문기사를 들고 와 심포지엄을 무산시켰던 것처럼 그들 역시 충분한 자료와 상황 검토를 거쳤다고 보기 어렵다. 학술적 영역에 맡길 일을 정치적으로 풀려 한 꼴이다.

역사 균형 잡기 중단 없어야

역사학계에서 교과서포럼은 미약한 존재다. 근현대사 연구 분야에서는 대한민국의 탄생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역사관이 팽배해 있다. 골리앗과의 외로운 싸움을 연상시킨다.

비록 잘못이 있었더라도 바로잡기의 당위성마저 흔들려선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관을 나무라는 사람은 많아도 그런 편향적인 역사관을 바꿔 놓기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우파 진영에 별로 없다. 교과서포럼이 택할 길은 하나뿐이다. 치열한 토론과 의견 수렴을 거쳐 국민이 공감하는 훌륭한 대안교과서를 내놓는 일이다. 혹독한 시련을 약으로 삼아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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