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은 민족의 무궁 번영을 위한 강력한 무기를 마련한 민족사적 사변이다.” 북한 노동당은 10월 9일 핵실험 직후 당 간부와 주민에 대한 사상교육용 강연 자료에서 이렇게 자화자찬했다고 한다. 사변론(事變論)은 “우리나라에서의 핵실험 성공은 반만년 민족사와 세계 정치사에 특기할 역사적 사변” “핵실험은 강성대국의 여명을 불러오는 민족 번영의 일대 사변” 등으로 이어졌다. 시대착오적 주체사상으로 반세기가 넘도록 주민을 속여 온 집단다운 궤변이다.
▷북한을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시키고 수백만 주민을 굶어 죽거나 배곯게 만든 게 그들이다. 핵무기가 민족의 무궁 번영을 위한 무기라니 도깨비 방망이라도 된다는 건가. 북한 전문가이기도 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핵무기를 ‘악성종양’으로 규정했다. 그는 저서 ‘통일은 산사태처럼 온다’에서 “핵무기라는 악성종양을 스스로 만들어 몸속에 지닌 북한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북한 당국은 대외 홍보잡지 ‘금수강산’ 8월호에서 핵 보유를 “전체 조선 민족의 안전을 담보해 주는 민족 공동의 핵우산”이라고 강변했다. 권호웅 내각 참사는 7월 서울 남북장관급회담 때 “선군(先軍)이 남측 안전도 도모해 주고 있다”고 억지를 부렸다. 이는 남한의 친북좌파 세력을 겨냥한 발언일 터이다. 우리 사회에는 논리적 타당성이나 현실성도 없는 북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법시험 2차 합격자가 ‘우리의 주적(主敵)은 미국’이라고 말하는 세상이다. 북의 선전선동과 남의 포용정책이 이런 상황을 부채질했다.
▷3일자 미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세계 최대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을 ‘전쟁의 폐허에서 극적으로 솟아난 부활의 상징’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핵실험으로 조성된 긴장을 감안할 때 현대중공업은 위험에 처한 한국경제의 표상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북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반쪽에서나마 어렵게 이룩한 민족 번영이 심각하게 붕괴될 수 있다는 경고다. 핵이 민족의 무궁 번영을 위한 무기라니 그 ‘민족’은 도대체 누구를 지칭하는가.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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