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뉴질랜드에서 “한국에 미국의 핵무기는 없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연일 러시아 통신사들을 통해 “한국에 미국의 핵무기가 배치돼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핵 위협론’을 편 데 대한 응답이다. 1991년 남북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 직후 미국이 한국에서 전술 핵을 철수시킨 것은 세계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북이 새삼 이런 주장을 펴는 것은 자신들의 핵 보유를 정당화하겠다는 속셈으로 읽힌다. ‘남한에 있지도 않은’ 미국 핵을 핑계 삼는 술책이 역시 그들답다.
북핵에 대한 노 대통령의 생각도 더는 무심하게 넘길 수 없는 수준이다. 그제 호주 동포간담회에서 “북한에 핵무기가 있을지라도 한국의 군사력은 우월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지난달 2일 외국인 투자유치 보고회 때 한 것과 비슷한 발언을 반복했다. 그뿐 아니라 “설사 핵무기를 갖고 있더라도 (남쪽에) 치명적 상처는 입힐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기지는 못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국가안보의 최고책임자가 ‘치명적 상처’ 정도는 감내(堪耐)해야 한다고 보는 것인가.
2000만 명 이상이 밀집해 있는 수도권에 핵폭탄이 떨어지면 몇십만, 몇백만 명이 희생되고 경제와 국민의 삶이 파국적 상황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런데도 ‘군사력의 우월적 균형’을 거듭 주장하는 속뜻은 도대체 무엇인가. 북한 핵을 은근슬쩍 용인(容認)할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달리 이해(理解)할 길이 없다.
북은 한국에서 철수한 지 10년도 더 된 미국의 핵을 내세워 핵 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대통령은 실험까지 강행한 북의 핵무기를 “별것 아니다”는 식으로 말하는 오늘의 남북한 상황을 국제사회는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북의 핵 불장난 가능성에 가장 심각하게 대응해야 할 남의 대통령이 북핵을 ‘정치적 목적’이니 ‘방어용’이니 해 왔으니 국제사회가 남한과 북한을 ‘이상한 형제’로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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