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차준호]오락가락 행정에 ‘빈손’ 된 영종도 주민

  • 입력 2006년 12월 16일 03시 00분


14, 15일 집집마다 토지보상금 개별통지서가 날아든 인천 중구 영종지구.

5조 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풀려 “누구는 수백억대 부자가 됐다더라” “누구네는 외제차를 뽑았다더라”는 소문이 떠돌지만 이런 ‘돈벼락’이 딴 세상 얘기 같기만 한 사람이 적지 않다.

과수원을 하며 4억 원의 빚을 졌다는 허모(44) 씨는 공시지가 8억 원의 땅 400평을 갖고 있지만 9억 원을 보상한다는 통지서를 14일 받았다.

“양도세 1억7000만 원 내고 빚 갚고 나면 어디서 살아야 할지….”

25년간 농사를 지으며 7000만 원이 넘는 빚을 졌다는 김모(58) 씨도 “빚잔치를 한 뒤 고향을 떠날 생각”이라며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었다.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조상 대대로 영종지구에서 살아온 원주민이다.

정부와 인천시의 오락가락 행정 때문에 원주민은 피해만 보고 외지인만 돈방석에 앉았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걸까.

영종지구는 1990년부터 ‘도시계획 입안 중인 지역’이란 이유로 개발행위가 사실상 금지됐다. 이후 1995년 택지와 주거지가 다 들어설 수 있는 ‘시가화 조정구역’으로 수용이 결정되면서 땅값이 들썩였다. 정부와 시가 곧 땅을 수용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일부 주민은 손에 현금이라도 쥔 양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썼다. 하지만 토지 수용은 계속 연기됐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자 정부와 시는 급기야 “예산이 없어 토지 수용이 어렵다”며 주민에게 민간개발을 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했다.

하지만 2003년 8월 11일 영종지구가 인천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자 정부와 시는 공영으로 다시 개발계획을 수정했다.

이 무렵 빚에 쪼들리던 주민 70%가 외지인에게 땅을 팔았다. 정부와 시가 토지 수용 계획을 수차례 연기하고 개발 방식을 바꾸는 동안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토지공사가 영종지구 토지보상 대상자 5850명의 거주지를 분석한 결과 영종도 등 현지에 거주하는 주민은 28.8%인 1687명에 불과하다.

정부와 시가 일관성 없이 정책을 바꾸는 동안 영종 원주민 다수가 고향땅을 팔았고 오락가락하는 정책에 발 빠르게 편승한 외지인들은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뒀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하는 속담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 요즘 영종지구의 실상이다.

차준호 사회부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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