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신문의 설문조사에서 “과거에도 지금과 같은 극심한 혼란을 겪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510명 중 3분의 1이 넘는 사람이 “없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93%는 대통령선거를 앞둔 내년에도 혼란의 정도가 올해와 비슷하거나 더 심해질 것이라 봤다. 많은 사람이 9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지금을 더 혼란스럽게 여기는 것은 내부 분열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외환위기는 오히려 국민의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으며 우리 경제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었다.
아직 우리의 국가신용도는 ‘A’ 등급으로 외환위기 이전의 ‘AA―’보다 여전히 낮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등 잠재적 불안 요소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려면 경제기초체력 강화를 위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 시급한데 대한민국의 2006년은 대립과 갈등으로 심하게 얼룩졌다.
‘密雲不雨’ 표류하는 한국號
여당과 정부는 부실한 국정 운영과 지지율 추락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사회 도처에서는 불법 파업과 폭력 시위가 난무하고 있다. 각자의 목소리를 크게 낼수록,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애쓸수록 구성원 간 의사소통의 장벽은 점점 높아져만 가고 있다. 현 정부는 모든 쟁점에 실리적인 정책과 방안을 강구하기보다 이념적인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오히려 계층 간, 세대 간, 이익집단끼리의 불화와 갈등의 골을 점점 깊게 만들었다.
내부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구성원 사이의 의사소통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다. 서로 이해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상호작용 속에 구성원들은 그 사회에 대한 소속감과 공동체의식을 쌓을 수 있다.
지도층이 의사소통에서 흔히 범하는 실수는 말하기는 좋아하되 듣기는 소홀히 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을 자신의 틀에 갇히게 하며 냉엄한 현실을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리더는 자신의 신념과 주장에 입각해 일방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기보다는 공의와 정의, 지혜에 의지해서 분별하고 구성원의 관심사에 공감적으로 경청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충고와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 자신의 허물을 고칠 줄 아는 포용력이야말로 자칫 잘못된 정보와 지식에 의해 독선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리더는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조직에 활기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기도 하고 조직을 와해할 수도 있다. 올해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말 중 “공부 안 하면 이라크에 파병돼 고생하게 된다”는 존 케리 미국 상원의원의 발언이 그렇다. 이라크 파병 정책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한 말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많은 미군 장병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주었다. 언어의 파괴성과 창조성은 백지장 한 장 차이지만 그 백지장 한 장에는 가치관과 인생관, 마음속에 쌓아 둔 감정과 성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위기 상황이나 해결하기 힘든 문제에 봉착할 때 경솔한 모습을 보일 수 있으므로 어려울 때일수록 언어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문제를 붙들고 한탄하기보다는 이를 도전으로 생각해 기회로 만들려고 노력하며 진정성 있는 칭찬과 격려의 언어로 구성원의 사기를 북돋우는 사려 깊은 면모를 보여야 조직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새해 국민 배려하는 정부 되길
논어의 안연 편에는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의 요체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내용이 있다. 이에 공자는 “정치란 경제(足食), 군사력(足兵), 그리고 백성의 신뢰(民信)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 중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백성들의 신뢰라고 했다. 현 정부가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도에는 국민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책임감 있는 의사소통으로 공신력 회복에 주력해 주기를 바란다. 대한민국호에 승선한 국민 모두가 한 방향으로 노를 힘차게 저으면서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외쳐 볼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이 통(通)하는 새해를 맞고 싶다.
이경숙 객원논설위원·숙명여대 총장 kslee@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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