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삭발과 순교

  • 입력 2006년 12월 21일 19시 45분


어제 조간신문에 실린 기독교 목회자들의 삭발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30여 명의 굳은 표정에서 팽팽한 긴장과 결의가 느껴졌다. 기자회견 장면은 그야말로 ‘구름이 잔뜩 끼었으되 비는 오지 않아 답답한’ 우리 사회 밀운불우(密雲不雨)의 한 현장이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삭발은 순교를 의미한다. 순교한다는 마음으로 개정 사립학교법에 반대한다”고 외치게 만들었을까.

▷기독교 목회자들에게 삭발은 어울리지 않는다. 목회자들의 집단 삭발과 순교의 각오는 범상한 일이 아니다. 원래 삭발은 출가한 수행자(스님)가 세속인과 구분하고 ‘세속적 번뇌를 단절’한다는 뜻에서 한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고 해서 ‘세속적 욕망의 상징’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언제부터인지 ‘투쟁 의지’를 보여 주는 수단으로 일부 변질되기 시작했다. 단식(斷食)과 곁들이면 더욱 강한 결의를 나타낸다. 반면 순교는 목회자들에게 제격이다. 기독교 역사는 어느 부분 ‘순교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교자는 죽지만 순교는 결국 승리를 이끄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역사상 첫 순교자로 기록된 신라 승려 이차돈의 불교 봉행(奉行) 주장은 신라가 불교를 국교(國敎)로 삼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선 말기 김대건 신부에 이어 대원군 시절 천주교 신자 8000여 명의 순교는 오늘날 교세(敎勢) 확산의 큰 밑거름이 됐다. 일제 강점기 주기철 목사의 신사 참배 거부 및 순교 역시 기독교를 강하게 키우는 역할을 했다.

▷사학법의 개방형 이사제를 둘러싼 기독교계의 삭발 투쟁은 극단적 분노의 표현이다. 사랑과 용서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그들이 오죽하면 이 법을 개정한 국회의원들을 ‘사악한 의원’으로, 사학법을 ‘사악법’ ‘사탄의 법’으로 낙인찍었을까.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회가 추천하는 개방형 이사가 학교재단에 들어오면 ‘신앙과 선교’라는 건학이념을 구현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종교계의 걱정을 최대한 반영해 사학법을 재개정하는 게 순리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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