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저신뢰’의 대가

  • 입력 2006년 12월 28일 03시 05분


미국 스탠퍼드대의 미셸 박사는 네 살배기 아이들에게 달콤한 마시멜로 하나씩을 나눠 주며 15분간 먹지 않고 참으면 상으로 한 개를 더 주겠다고 했다. 아이들 중 3분의 1은 15분을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어 치웠고, 3분의 2는 끝까지 기다려 보상을 받았다. 여기까지가 올해 베스트셀러인 ‘마시멜로 이야기’의 줄거리다. 궁금한 건 다음이다. 왜 많은 아이가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어 버렸을까.

▷교육학자들의 답은 분명하다. 마시멜로를 냉큼 집어먹은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신뢰가 낮은 집단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조금만 참으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겠다는 미셸 박사의 말을 믿은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은 ‘신뢰의 힘’을 입증한다. 어른에 대한 아이들의 신뢰는 거의 전적으로 부모를 통해 형성된다. 그런 점에서 마시멜로를 먹은 아이들이 아니라 불신을 심어 준 부모에게 원초적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신뢰를 ‘사회적 자본’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사회적 자본 빈국(貧國)’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에 따르면 정부 정당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10점 만점에 3점대로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해 갖는 믿음보다도 낮다. 직장 동료와 동호인, 이웃에 대한 신뢰도가 6점대로 비교적 높고 교육기관과 시민단체가 5점대이며 언론, 군대, 대기업, 법원, 검찰은 4점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저서 ‘트러스트’에서 한국을 사회구성원 간 신뢰가 낮은 ‘저신뢰 사회’로 분류했다. 공동체적 연대의식보다는 가족주의와 연고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저신뢰는 고비용을 낳는다.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감시와 통제에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특히 정부에 대한 불신은 정책의 효과를 떨어뜨린다. 정부가 ‘세금 폭탄’으로 집값 잡기에 나섰지만 역효과가 나는 것도 그런 사례다. ‘신뢰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라는 말은 모든 관계에 통용될 터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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