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광화문광장

  • 입력 2006년 12월 29일 03시 00분


유럽의 옛 도시들은 도심 한가운데 대형 성당이 있고 그 앞에는 어김없이 광장이 있다. 성당이 ‘신을 위한 공간’이라면 광장은 ‘인간의 공간’이었다. 미사를 마친 뒤 사람들은 자연스레 광장으로 나와 삼삼오오 어울려 이야기꽃을 피웠다. 세상사를 놓고 다양한 의견과 토론이 오갔다. 서구의 민주주의가 광장에서 싹텄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18세기 말 베네치아를 정복한 나폴레옹은 이젠 관광명소가 된 산마르코 광장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치켜세웠다.

▷광장을 통해 민의가 모아지는 이른바 ‘광장 문화’가 한국에선 꽃피기 어려웠다. ‘사랑방 문화’가 있긴 했으나 생각이 엇비슷한 소수끼리 모이는 폐쇄적인 구조였다. 우리가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토론의 장소’로서 광장의 역할은 축소되고 있다. 소통의 중심이 컴퓨터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그 대신 각국의 유명한 광장들은 축제와 휴식을 위한 곳으로 바뀌었다. 고층빌딩 숲 속에 탁 트인 녹색의 광장은 바라보기만 해도 도시생활의 긴장을 덜어준다.

▷서울도 광장다운 광장을 지니게 됐다. 광화문과 세종로 사거리 사이에 조성될 ‘광화문광장’의 설계가 확정됐다. 차로를 대폭 줄이고 도로 중앙에 폭 27m, 길이 500m의 광장을 만들기로 했다. 서울광장, 숭례문광장과 바로 연결되므로 시민들은 광화문에서 숭례문까지 편하게 걸어갈 수 있다. 서울을 대표하는 거리의 주인이 자동차에서 보행자로 바뀌게 되는 것은 박수 칠 변화다.

▷광장은 쉽게 말해 ‘열린 공간’을 뜻한다.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 인간적 교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다. 탄생부터 쉽지 않았던 서울의 도심 광장은 부끄럽게도 폭력 시위와 대립의 현장으로 자주 변질됐다. 광화문광장까지 완성되면 누구보다 시위꾼들이 탐내지 않을까 염려된다. 세계에 내놓을 광장을 만들기에 앞서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의사표현의 틀부터 확실히 해 놓아야 할 것 같다. 광화문광장의 등장이 한국의 ‘광장 문화’를 형성해 가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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