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승호]부동산 정책, 부동산 정치

  • 입력 2007년 1월 3일 19시 53분


의도가 좋다고 결과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서울공화국’이고, 형평(衡平)지향 정책 속에서 소득 분배는 악화됐으며, 교육평준화 정책 아래서 서울 강남 학군의 서울대 진학률은 높아졌다. 하물며 표만 노린 ‘날림 선심정책’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선심 공약은 지키지 않아도 문제지만, 무리하게 추진하면 더 심각한 결과를 불러온다.

이른바 ‘반값 아파트’ 정책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전체 아파트 값을 낮출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이것을 아파트 값 안정의 특효약인 양 선전하며 당론으로 채택했고, 최근에는 열린우리당까지 거들고 나섰다. 열린우리당은 또 모든 아파트의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전월세 인상률을 연 5%로 제한하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민간아파트의 분양원가 공개는 반시장·반기업적인 발상일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아파트 공급을 위축시키고 품질을 떨어뜨린다. 전세금이나 월세를 억지로 누르면 수요가 몰릴 때 ‘이면계약’이 이뤄지기 십상이다. 이는 실거래가 신고를 통해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정부 정책과 거꾸로 가는 길이다. 또 나중에 세입자가 계약서에 적지 않은 돈을 떼일 수도 있다. 이면계약은 이중가격이 존재하는 일종의 암시장을 형성함으로써 국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다.

황당하기는 야당도 비슷하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무주택자와 신혼부부에게 집 1채씩 주기’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의 경우 국가가 직접 시행을 맡는 ‘국가시행분양제’를 제시했다.

여야의 여러 주장은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부동산 정치’라 할 만하다. ‘그것이 시장원리에 맞느냐’가 정책과 정치를 가르는 한 기준이다.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포퓰리즘식 정책구상은 우선 듣기에는 달콤할지 몰라도 당초 내세운 목표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부른다.

이 같은 ‘날림 공약’들에 대해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채택되기 힘든 사안이 정치적 슬로건 아래 제시됐다”고 지적했다.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전월세 인상 제한은 사유재산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등 위헌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은 “분양원가 공개는 비용을 싸게 해서 이익을 남기겠다는 기업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 장애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여당에서도 강봉균 정책위의장이 “분양가 전월세 인상 제한은 내가 막을 것”이라고 나섰다.

공약에 대한 내부견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모습은 신선하다. 한때 경제공무원들은 정치권의 불합리한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사례가 많아 ‘영혼 없는 관료’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들의 변신 배경에는 여당과 청와대 간 갈등이 작용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어쨌거나 시장원리에 맞는 변신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정부 당국자들이 정치권의 주장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자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당이 국민에게 한 공약조차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정부 관계자가 있다면 쉽게 넘어갈 수 없다”고 겁을 줬다. 김 의장이 들먹인 ‘국민’의 이름으로 그에게 말한다. “사리에 맞지 않는 공약을 남발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공무원을 위협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국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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